로그인 회원가입
달바라기
글쓰시고 싶으신 분 아무 분이나 남기세요.그런데, 너무 무미건조할까봐 미리부터 걱정되네요. ^^*
공중분해

위대한 사상가였던 볼테르가 생각난다.  볼테르가 살았던 시대의 프랑스에는 오랜 전통의 이상한 관습이 있었다.  천재적인 사람한테서 천조각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으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전성기 때의 볼테르는 아침 산책길에도 경찰의 보호를 필요로 할 만큼 위대한 사상가로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기차역으로 나갈 때도 경찰의 보호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의 옷까지 찢어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거리로 나갔다가 옷을 다 찢기고 온 몸을 긁힌 채 집으로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듯 그는 명성 때문에 엄청난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그때 볼테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한테 존경받고 유명해지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재앙일 뿐이다.  나는 다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옆으로 지나가도 전혀 주목하는 사람이 없는 무명인이 되고 싶다.  나는 유명세에 지쳐버렸다.  나는 집 안에 갇힌 죄인이나 다름없다.  나는 아름다운 색깔로 물드는 저녁 노을을 보러 산책을 나갈 수도 없다.  군중이 두렵다."

볼테르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그가 두려워한 군중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볼테르는 깊은 우울증과 슬픔에 빠져서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유행처럼 변한다.  서서히 새로운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세상 위로 떠올랐다.  특히 루소는 한때 볼테르가 누렸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다.  마침내 볼테르의 소망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는 무명 인사가 되었고, 더 이상 경찰의 보호도 필요없게 되었다.  아무도 그에게 인사조차 건네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볼테르는 죄수처럼 지내야만 했던 옛날이 더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일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이제 나는 어디든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그 상처는 점점 더 커지고 아프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데도 사람들은 볼테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볼테르가 죽었을 때 무덤까지 따라온 행렬은 단 세 명 하고도 반에 불과했다.  세 명 반.  세 명은 사람이었고, 볼테르의 개가 반으로 계산되었다.  개가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댓글 작성

히스토리

키쉬닷컴 일기장
  • 일기장 리스트
  • 맞이꽃 602
    일기장 메인 커뮤니티 메인 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