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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오랫만에 만났던 고향선배

시골에 갔을 때였다.거기 고모님 상가에서 오랫만에 윤섭이 형을 만났다.얼마만인지 모른다.실로 거기 순천을 떠나온지 첨인가 보다..1974년 5월 14일날 내가 순천에서 서울로 雄志를 품고 올라오고 나서 첨인것 같다.그러니 그게 대체 얼마나 되는 시간이 흘러갔는가....?이 윤섭....나보담 5살인가 더 많은 나이의 선배...헌데 인연이 많다 기이 하게도 인연이 많은 사람 이 윤섭...군대도 같은 날입대하고 제대도 같이 한 입대 동기에다 공직에 같이서 시험도 같이 본 동기지만 난 신원조회에서 낙방되어 그는 4월에 발령 받아 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였던 그 쓰라린 세월...그가 4월에 발령 받아 가고 난 9월에 발령 받아 갔으니 곧따라 거기 순천교도소에 우연히 같이 근무한 기이한 운명이었다....첨에 간단 것이 바로 이 윤섭의 형의 집을 찾아서 얼마간 숙식하고 지냈었다...그래도 사람좋은 이 선배는 그저 편안히 대해 주던 좋은 선배였었지....거기 순천의 생활들....같은 을부 근무에다 쉬는날은 같이 쉬고 그는 술도 먹지 않고 착한 사람이라 누가 보면 그리도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흉도 보고 해도 그는 개념치 않고 자기식으로 살던 그저 착한 직원이었다....고지식 한 것이 무슨 흉인지 그를 동료들은 왕따 시키고 해도 난 옹호한 편...누가 무어라 해도 화를 내지 않는 좋은 사람이었지...내가 떠나고도 그는 거기서 정년을 맞이 하고 ...한 우물을 끝까지 마치고 그는 그 어려운 교도관 생활을 마지막 까지 성실히 수행한 현대의 보기 드문 성실한 일꾼이었다...순천의 지난 일들.......쉬는 날 둘이서 돌아다니던 그 선평리 마을....시내로 선평리로 둘이서 잘도 돌아 다녔지.오랫 만에 만나니 그리도 반갑고 어제의 소중한 잃어 버린 추억을 찾은 것같이 반가웠다.상가가 아니람 어디서 해도 해도 끝날것 같지 않던 애기들.....아쉬웠다...긴 애기를 나눌수 없던 상황이....그러나 능력이 없을진 몰라도 이 선배는 성실성은 인정받아서 아마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 순천 교도소 자리를 뜯고 다시 신축을 할거란 애기다..정년을 마치고도 거기를 벗어나지 않고 제2의 고향같이 살고 있는 이 선배...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그는 변한것은 이마만 벗겨진것 말고는 달라진것이 보이지않은 건강함을 유지 하고 있다.욕심내지 않고 분수껏 살고 맘을 편안히 사는 것이 그런 비결이 아닐가....기회가 주어진 다면 한번 가보고 싶다...승주군 서면 선평리...그 맑디 맑은 물이 흐르던 그 선평리 강가에서 발도 담그고 목욕도 하던 그 강...강이라 하기엔 좁고 시냇가라하기엔 큰 강........질펀히 펼쳐진 들 사이로 오막 조막하게 자리한 시골동네들....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던 선평의 강물...그 강가에서 난 사랑도 속삭였고 여름 밤은 원두막에서 익막이와 여름밤의 낭만을 속삭인 추억도 만들곤 했었지....그런 데이트 현장을 동료 직원들의 눈에 띄어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지.2 년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 작은 곳에서 그래도 낭만도 사랑도 인간의 정이 흐르는 사람들과 지내고 왔었다....첫 공직 시작한 곳이라선지 ?순천의 일들이 난 잊혀지지 않고 새롭게 기억되곤 한다..김 규호라는 두 얼굴의 사나이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배신감이란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뼛속깊이 느끼기도 하고 ...그 규호의 동생을 사랑의 감정으로 대화 도 하고 편지도 나누고 하던 일들...떠날때 아쉬워 하던 현정이 엄마의 눈물어린 이별의 장면들....거기 순천에 살던 사람들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단 생각이 들곤 한다.바로 엊그제 같은일들이 생생히 기억된것은 순전히 이 윤섭선배의 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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