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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그 맑던 눈빛이 그립다

- 박 라연 -가을엔 수혈을 받고 싶은 대상이 많다.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표정, 스며들고 싶은 눈동자가 그리워진다. 물들고 싶은 내면, 잠시나마 기대고 싶은 등이 있다. 달디 단 즙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가을의 일몰을 닮은 눈동자, 단풍이 곱게 물든 눈동자를 만나려고 고개를 빼본다. 특히 자신의 한 해를 일찌감치 베어낸 후의 넓은 들판의 고요를 만나면 그 수면에 슬쩍 끼어 들고 싶어진다. 가라앉고 싶어서, 비워내기 위해서이리라.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는 뜻밖에도 가라앉음, 지움의 철학을 터득하는 순간에 그 화력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므로, 존재의 육체를 한 해에 한번씩 소거시킬 줄 아는 이에게 새 봄의 씨앗이 허공 어딘가에서 툭! 하고 떨어져 내릴 것을 믿고 싶어서이리라. 지금 행복하면 빚을 진다는 생각, 지금 힘이 들면 저축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변화무쌍한 나날의 무게, 그 저울을 딴엔 지혜롭게 품고 산다고 믿었다. 또 힘이 센 불행이 힘없는 행복을 이리 저리 끌고 다녀도 우리는 아무의 편도 들 수 없는 세상 위에 놓여졌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해 버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종교를 초월해 믿고 의지했던 생의 한 규칙에 대해, 그 규칙의 정교함에 대해 뼈아픈 전율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순간을 보냈는가에 대해, 그 때 그 골목을 어떻게 스쳐 지나갔는가에 대해, 심지어 제 맘속에 어떤 생각을 품었는가에 대해서까지, 그 본원적 질량은 그대로 보존되어 어느 날 우리 등을 잡는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해진 날, 그들이 옛날의 빚을 청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온다는 점이다. 한 존재의 모든 내력에 대한 대가는 이 우주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마치 그 주인이 품었던 알의 부화처럼, 반드시 되돌아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뼈아픈 전율을 통해, 후회를 하면서, 늦은 밤에 홀로 남아 내 내면을 수없이 들여다 보는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손에 그 오래 전의 빚의 흔적이 사라지고 깨우침의 흔적 하나가 쉽게는 해독될 수 없는 한 문장으로 남았다. 몇 달 동안 그 문장의 해독을 위해 나를 바쳤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지만, 서투른 해독이 어렴풋이 떠오를 때도 있다. 우리가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꾸려 하지 않으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올의 탐욕이 우리를 수렁으로 빠져들게 할 수 있고, 한 올의 불길이 절망을 이기는 희망으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문득 뇌리를 스치는 질문 하나가 있다. 나이가 들면 왜 우리의 눈동자는 빛을 잃어 가는가 이다. 성직자, 교수, 저명 인사, 정치인들의, 그 블루의 눈동자를 쉽게 믿어버린 탓에, 그냥 허망 속에 빠져버렸을 순수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믿고 기댄 만큼의 대가는커녕 다시 그들의 소중한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나 했었는지가 궁금해진다. 늦가을 이 화창한 아침에 우리 모두 저마다의 기억 속에, 아직은 살아있을, 아침 이슬들을 꺼내어 두 눈 가득히 다시 담아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버려지는 순간들을 봉지에 싸서 저마다의 공중에 매달아 보았으면 싶어진다. 매달려 산만큼 우리의 생도 아름답게 단풍 들 수 있다고 믿으면서 생애의 단 한 번만이라도 뼛속 깊이 단풍들 수 있기를 기원해보고 싶다. 단풍들어 저마다의 문지방을 나서면, 잃었다고 통곡했던 마음들이 두툼한 심장이 되어 새로운 일상의 사이사이로 숨어 들어와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시인 ) * 조선일보의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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