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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농민 황보태조씨의 자식교육

자녀교육은 당연히 부모 모두의 일이지만, 아버지는 바쁜 사회생활을 이유로 이를 어머니에게 전담시키기 쉽다. 휴일에 놀이동산 같이 가는 것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표시하지만, 곁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는 `교육'까지 하기엔 우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북 포항 구룡포읍에서 농사를 짓는 황보태조(55)씨는 여기서 예외가 될 듯하다. 다섯 자녀 모두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직접 한글을 깨우쳐 줬으며,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한자와 영어, 수학공부를 도와줬다. 무엇보다 고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황보씨는 자식들에게 책 읽는 습관이라는 가장 큰 재산을 물려줬다. 그랬기에 이웃 사람들은 황보씨의 자식농사는 풍년이라고 말한다. 첫째, 둘째 딸은 의대를, 세째 딸은 포항공대를 졸업했다. 네째 딸은 약사의 꿈을 키우고 있고, 막내아들은 지난해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외견상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식간의 친밀감에 바탕한 화목한 가정과 그를 통해 자식들이 올곧은 가치관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황보씨의 자식농사가 성공한 것은 단순히 `땅과 날씨가 좋아서'가 아니다. 남다른 땀과 자녀 교육법의 결실이다. 그가 자식농사에 구슬땀을 흘린 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46년 아버지를 여의었다. 화로에 곰방대 터는 소리만 들어도 놀랄 정도로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항상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워 했다고 한다. “첫째 딸을 낳을 때 아버지 노릇 한 번 잘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공부를 잘 하도록 해 좋은 대학 보내겠다는 생각 없이, 한글 깨우치기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라도 직접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농한기에 이웃집 아버지들이 화투를 치거나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자식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함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자녀들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막내아들 율(20)씨는 “다른 집들도 부자 사이에 저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줄 알았는데, 말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버릇없는 얘기지만 아버지랑은 친구처럼 친해 뭐든 얘기를 나눕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율씨의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는 말에 겉치레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자식농사는 부인 김화순(57)씨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황보씨의 교육법에 동참해 각종 공부 놀이에서 조연 역할을 해준 것은 바로 어머니였다. 막내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는 `편지놀이'를 했는데, 읍내 시장에 먹거리 사러 갈 때 한글을 모르는 아들이 먹고 싶은 것 이름을 `그려' 편지를 주면 그것을 하나씩 사다 줬다. 이를 통해 물건과 글자를 대응해 한글을 깨치게 한 것이다. 황보씨는 자식농사에서 아버지의 참여를 특히 강조했다. 어머니가 사랑으로 자식을 보듬는다고 해도,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교육하려면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도덕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그는 술과 화투를 멀리하면서 먼저 실천하는 생활태도를 지켜왔다. “요즘 아이들은 머리가 조금만 굵어져도 어머니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이 때 아버지가 팔짱끼지 않고 자식 교육에 한 몫을 한다면 훨씬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자녀들과 친구처럼 지내 아이들이 “버릇이 없을 정도”라는 황보씨의 말이다.'가슴높이' 교육 했어요 황보태조씨가 자녀들에게 준 것은 `고기가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이었다. 먼저 공부란 꿩잡이처럼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 산에서 꿩 새끼를 잡으러 다니면 그 재미에 빠져 해가 질 때까지 정신없이 쫓아다닙니다. 종아리에 수도 없는 생채기가 생기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지요. 교사가 교육상 좋다며 억지로 시키면 결코 얻을 수 없어요.” 황보씨의 이런 `교육철학'은 우선 자녀들에게 한글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적용됐다. 딸들이 인형놀이를 하면서 먼저 말로 익힌 공주와 왕자의 이름을 `그리게' 하면서 글자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했다. 이렇게 놀이를 통해 한글을 익히게 하는 과정에서 황보씨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런 교육법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울 때 훈장님의 회초리 앞에서 오금이 저렸던 황보씨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에게 공부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부 놀이, 구구단 놀이, 학교 놀이 등 아이들이 하는 일에는 무엇이든 `놀이'라는 말을 붙여 줬다. “한글은 때리거나 벌을 줘서 가르칠 수도 있고, 놀이로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 만들어진 공부에 대한 태도가 평생을 간다는 겁니다.” `행복한 공부'를 맛보게 한 것과 함께 그가 심혈을 기울인 대목은 자녀들에게 독서습관을 붙여 주는 일이었다. 동네 어귀에서 놀기만 할 뿐 책과는 담을 쌓았던 막내아들의 경우는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만화영화를 볼 때만 엉덩이를 붙이는 것에 착안해 만화그림책과 등 만화의 원전이 되는 책을 사줬다. 아이들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물론이다. 또 옥수수 뻥튀기를 가까이 두면 자연히 손이 가는 것처럼, 책도 책장이 아닌 방바닥에 `깔아둬' 항상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했다. 겨우 책 보는 습관이 잡혀갈 무렵인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아들에게 고비였다. 어른들이 보는 6권짜리 에 도전해 그 긴 책을 다 읽은 것이다. 이를 고비로 아들의 독서력은 일취월장했다. 일단 재미를 붙이자 `어린이 수준'을 간단히 뛰어넘어 아버지와 독서시합을 해도 이길 정도였다.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집착해 점수로 닦달하는 `눈높이' 교육보다는 아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에 맞춰 스스로 해나가게 했던 `가슴높이'교육이 필요합니다” 황보씨의 말이다. - 한겨레 신문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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