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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이참에 대학이나 세워봐?

연구도 안하면서 `철밥통'만 차고 앉아 있다는 등의 비판 때문에 교수 노릇 하기가 그리 편하지만도 않은 요즘, 문득 다 때려 치우고 대학이나 하나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부질없는 망상에 젖어 본다. 먼저, 가능하면 인구가 많은 대도시 주변의 저렴한 땅을 물색하되, 이미 학생부족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지역은 피해야 한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기가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요로에 줄을 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일은 훨씬 쉽게 처리될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철학과나 국문과 같은 걸 만들었다간 정원미달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돈 많이 들어가는 공과대학이나 의과대학 같은 걸 어설프게 만들었다간 큰일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면 유지비용은 별로 안 들면서 그럴 듯한 이름, 예컨대 사이버나 디지털 등의 수식어를 붙여 학생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혹시 광활한 캠퍼스나 최소한 도서관 정도는 갖추어야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지레짐작할지도 모르겠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컨테이너 몇 개 놓고 시작한 대학들도 있었거늘 대충 비 피하고 햇빛 가릴 수 있는 건물 하나 정도면 충분하다. 그 다음엔 교수를 뽑을 차례다. 왠만한 학문분야라면 박사학위 받고 대학에서 몇 년째 시간강사하고 있는 인력들이 널려 있다. 신문에 조그만 교수초빙공고 하나 내면 전국 각지에서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 연구실적 보따리 한 아름씩 들고 달려올 것이다. 혹시 학교운영비가 다소 부족하다면 이 참에 돈을 좀 모을 수도 있다. 자격 없는 사람을 순전히 돈만 받고 교수 시켜주라는 뜻은 아니니까, 지나치게 민감하게 생각하지 말라.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마약거래 하듯 은밀하게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신임교수가 `약간의 금액'을 학교발전기금으로 재단에 납부하도록 하면 뒷탈도 없고 깨끗하다. 이제 신입생을 모집한다. 다소 진부하지만 “정보화에 부응하는 국제적 인재 양성” 따위의 카피를 붙여 매스컴에 광고도 한다. 돈이 약간 아깝겠지만 이윤을 얻기 위해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가 아닌가?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고 천 명 정도만 뽑자. 그래도 등록금으로 연간 오십 억원 정도의 현찰이 들어온다. 전임교수는 열 명 정도면 충분하므로, 인건비에 부대비용까지 다 포함해도 몇 억밖에 안 든다. 교육부 권장 교수 일인당 학생 수가 스물 다섯 명인데 어떻게 하냐고? 겸임교수, 강의전담교수, 외국인교수 등등의 그럴 듯한 명칭으로 무늬만 교수인 시간강사를 쓰더라도 교육부에서는 전임교수와 대동소이하게 간주해준다. 정 귀찮은 일은 교육부에서 물러난 고위관료 데려다가 총장자리 하나 내 주면 대충 알아서 처리해 준다. 만약 일부 사상이 의심스러운 교수들이 무슨 협의회 따위를 만들어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면? 적당히 들어주는 척하다가 주모자 몇 명 골라 연구실적 부족으로 걸어 재임용에 탈락시켜버리면 곧 조용해진다. 혹시라도 유명연예인이 입학하겠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장미를 `lose'라고 쓰건, 학력인정 안 되는 외국인학교 출신이건, 홍보효과를 감안하면 무엇인들 감수하지 못하랴! 올해 받은 등록금으로 내년에 건물 하나 짓고, 내년에 받은 등록금으로는 내후년에 건물 하나 더 짓고 하는 식의 패턴만 반복하면, 부도날 걱정도 전혀 없이 아무 대학 이사장이라는 품위 있는 직함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운 좋게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 국회의원이라도 된다면, 당연히 `전문성을 살려' 교육분야 상임위활동을 통해 학교운영에 껄끄러운 법은 절대로 통과시키지 않아야 한다. 한 삼십 년 지나고 나면 학교도 어느덧 자리가 잡힐 테고 고등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교육훈장이나 대통령 표창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변변찮은 아들 녀석, 만만한 미국대학 하나 골라 유학시켜가지고, 교수 몇 년 시키다가 이사장 자리 물려주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이만하면 꿩 먹고 알 먹는 장사가 아닌가? 류동민/충남대 교수·경제학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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