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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낀 무기 ( 퍼온글 )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청산별곡. 몽고 침략과 무신의 난으로 애환을 겪은 민중의 슬픔과 슬기가 서리서리 스며있다. 뜬금없다고 나무라지 말기 바란다. 머루 향 그윽한 청산에 살고픈 향수는 오늘 더 짙지 않은가. 휴일마다 곰비임비 푸른 산을 찾는 인파만이 아니다. 깊은 산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눈 맑은 스님들의 넉넉함 때문만도 아니다. 강력한 외세와 지배세력의 민중억압이 천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진행형인 까닭이다. 현대판 `무신의 난' 주모자는 옹근 40년 권세를 누리며 한나라당과 더불어 국가보안법을 수호하고 있다. 민족분단에 개입한 미국은 여전히 노골적으로 남북화해에 딴죽 친다. 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지식인들의 언구럭은 전혀 변함없다. 보라. 일본과 미국으로 이어진 외세와 군사독재에 부닐던 입으로 언죽번죽 감히 민족과 민주를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예의 이 땅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다. 민중들은 청산별곡을 사랑했다. 더러는 `서울공화국'을 떠나 조용히 분노를 삭여왔다. 하릴없이 황금에 눈먼 도시에 살아야 하는 민중들은 아들·딸의 이름을 `머루'`다래'로 짓기도 했다. 세상이 삶을 속일 때는 깡소주를 마시며 노래했다.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청산에 살어리랏다. 기실 청산별곡을 읊는 민중 개개인은 아름답다. 푸른 산 붉은 놀 벗삼아 빚은 술 마시며 달관하기란 풍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 정직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청산과 달관이야말로 지배세력의 그물 아닌가. 친일·친독재로 지배세력을 대변해온 언론권력은 불의에 맞선 싸움을 한낱 이기주의로 몰아친다. 멋대로 하는 구조조정에 정당하게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노조이기주의로 을러댄다. `공권력'이 지아비와 아버지를 짓밟는 현장에서 울부짖는 처자들의 피눈물마저 차갑게 눈돌린다. 농민과 빈민들의 목숨을 건 생존권 투쟁도 안락의자에 앉아 근엄하게 꾸짖는다. 자신들만이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난듯 태깔스레 국가엘리트를 자처하는 이들의 정체야말로 참으로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다. 노동자·농민·빈민을 시들방귀로 여기며 기득권을 조금도 나누지 않는 탐욕은 천년을 이어가고 있다. 그 언론권력을 심층해부하는 보도마저 이기주의란다. `진흙탕싸움'따위로 탈세·특혜·비리라는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색깔망령'까지 나섰다. 기득권세력의 또다른 대변자인 수구정당도 막보기는 마찬가지다. 언론권력 비판을 `헐뜯기'로 헐뜯는다. 근거도 없이 권언유착 음모론으로 음모를 꾸민다. 서글픈 세태다. 살여울에 귀 씻고 청산에 살고픈 까닭이다. 하지만 마땅히 싸워야 할 사람들이 청산에 살았기에 즈믄 해가 흘러도 외세는 강력하고 기득권세력은 탐욕스러운 것이 아닐까. 더구나 오늘의 민중에겐 돌아갈 청산조차 없다. 머루랑 다래랑 은둔할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국 곳곳의 들과 산자락은 이미 서울에서 방귀깨나 뀌는 자들이 야금야금 파먹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는 애오라지 소박한 꿈인 가족의 행복마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민중들이 맑은 삶을 살아갈 청산이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청산은 `아직 오지 않은 땅'이다. 친일파와 분단세력 그리고 군부독재가 지배해온 `추악한 과거'를 깔끔히 청산한 자리, 바로 그곳이 청산이다. 민중이 사람답게 살아갈 새로운 사회다. 2001년 봄 마침내 전국민중연대 준비위원회가 세워졌다. 민중이란 말조차 잃어가고 있는 오늘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내걸었다. 민중연대의 `거룩한 싸움'마저 언론권력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이기주의로 먹칠할 것이 분명하다. 언론개혁이 민중운동의 당면과제인 까닭이다. 우리 민중에게 돌아갈 청산은 없다. 흙먼지 휘날리는 삶의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가슴 깊이 묻어두어 청동빛 이끼가 끼어가는 `무기'를 이제는 꺼낼 때다. 반민중적 보도를 일삼아온 언론권력에 민중의 힘을 보여줄 때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손석춘/여론매체부장[email protected] - 한겨레 신문 컬럼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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