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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끝에 뒤틀리는 역사 (퍼온글)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드러내 보이는 의 언론개혁 특집을 읽으며 줄곧 영화 의 장면들이 연상됐다. 가차없는 보복과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도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조폭언론이라는 요즈음 표현이 서글프게도 실감나는 것이다. 한때는 언론을 두고 사회의 목탁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끝내 언론을 내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역할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언론권력이란 말이 대신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막강한 권력기관이란다. 1948년 법률 3호로 공포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일본침략 정책에 협조한 반민족적인 언론인에 대하여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그 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만일 당시 그 반민법이 정상적으로 시행됐다면 그 뒤 우리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2차대전 후 프랑스에서는 나치에 협력한 언론인을 총살하기도 했고 그런 신문을 폐간했다. 그같이 우리도 해방이후에 친일파를 올바로 청산했다면 현재처럼 한국언론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50년 현대사에서 32년이나 긴 시간을 군사독재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최소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은 수치스러운 역사를 지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에는 언론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았다. 그 때는 촌지 정도로 관리가 가능했었다. 당시는 언론이 최고 권력자에 아첨하고 나팔수 노릇하면서 이권을 챙기는 정도에 머물렀다. 어찌 보면 총칼의 위협에 굴복한 어용언론이거나 기껏 자신의 양심을 저버린 사이비로 비난받는 정도였다. 대부분 독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대신 외쳐주면서 행간에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시비를 올바르게 가릴 수 있었다. 잘못된 언론으로 인해 판단이 흐려지고 이성이 마비되지는 않았다. 요즈음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이제는 독재자의 그늘에 의지하던 것에서 벗어나 언론 스스로 최고의 권력자로 나섰다. 그들은 여론을 쥐락펴락 하면서 자기들 구미에 맞게 가공하고 조작해 낸다. 막강 언론이 규정하고 해설하면 그것이 곧 사실로 치부돼야 한다. 이제 진실이란 다름아닌 오만한 언론의 펜 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또 그 오만의 정도에 따라 바로 오늘날 언론사들의 권력 서열이 정해진다. 박태준 국무총리가 손아래 언론사 사장에게 친밀한 표현으로 반말을 건넸다가 치도곤 당했다는 얘기에는 정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전제왕권시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하기야 스스로 밤의 대통령을 자처했다고 하니 그 눈에는 모든 것이 100년 전의 조선시대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니 정치인은 철저하게 권력화한 언론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물론 공천을 통해 혹은 집권하면 큰 자리를 주겠다고 거래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언론인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때로는 조언을 구하는 척하면서 아첨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언론개혁의 주장이나 언론기관 세무조사를 두고 연일 언론탄압이니 언론자유 침해니 비위 맞추는 나팔을 불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가 두려운 언론권력은 우격다짐으로 과거의 질서를 강요한다. 이러한 언론으로 인해 우리사회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청맹과니 생활을 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언론이 오도하는 대로 일희일비하거나, 혹은 격분하고 혹은 찬송해야 하는 꼭두각시의 역할만 남아있다. 수많은 독자들은 그 방법에 순치 되어 새로운 변화에 두려움을 느낀다. 냉전시대가 역사저편으로 사라졌음에도 한사코 그 울안에 갇혀 있고자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일은 지난 현대사를 통해 가치 있게 지켜내야 할 부분과 청산 극복해야 할 부분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화한 언론은 이런 가치 기준을 망가뜨리고 있다. 지난날 양반지배층이 기득권에 집착하다가 미래를 통째로 상실하게 만들었던 과오를 현재의 언론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역사가 또다시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언론개혁을 더욱 다잡아 추진해야 한다. 지금의 언론개혁은 지난 역사에서 언론이 범한 오욕의 과거를 청산하는 일이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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