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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신문 때문에 ( 퍼온글 )

“김영삼 정부는 수구 신문 때문에 망했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의 핵심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한 말이다. 이런 종류의 발언은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개혁적인 매체들을 통해 발언 당사자들의 실명과 함께 보도되기도 했다. 그렇게 실명으로 보도된 인사들 가운데엔 현재 한나라당 언론장악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박관용 의원도 포함돼 있다. “김대중 정부는 수구 신문 때문에 망했다.” 이제 우리는 얼마 후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수구 신문 탓을 해선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정작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수구 신문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갖는 것이 마땅할 사람들이 지금 수구 신문의 보호자 역할을 적극 자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김대중 정부가 수구 신문 때문에 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김대중 정부의 핵심 인사들 역시 수구 신문에 대해 정당한 응징을 하는 데에 앞장서는 게 아니라 자기의 생존과 출세를 위해 수구 신문의 비위를 맞추며 비굴하게 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수구 신문은 오직 이용의 대상일 뿐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한국의 개혁 진영은 철저하게 파편화되어 있다. 모두 다 개혁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곤 하지만 `나부터' 또는 `우리 조직부터' 잘 되게 하자는 데에 미쳐 있다. 물론 그건 정당하며 바람직한 면도 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수구 신문이 성역에 군림하면서 개혁을 좌초시키는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비극적인 것은 개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모든 노력을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수구 신문의 가공할 힘과 그 작동 방식을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보험 재정파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런 어이 없는 사태를 초래한 주범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주범 중의 주범이라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다음의 주범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런 어설픈 진상 규명으론 문제 해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무능한 정부의 책임은 가혹하게 추궁하되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 구조가 극도로 왜곡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의 지리한 파업 국면에서 나온 수구 신문의 보도와 논평을 보라.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오직 정부만 난타하면서 오히려 혼란만 키운 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현 정권의 출범 초부터 시작되었다. 수구 신문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데에 혈안이 되어 `개혁 대 반개혁' 전선을 순식간에 `디제이 대 반디제이' 전선으로 변질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현 정권의 몰락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 여론 구도하에선 그 어떤 정책도 정상적인 집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정권 망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 여론이 주도되는 상황에서 이룰 수 있는 개혁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민주적 정권 아래서의 모든 개혁은 일종의 `여론 투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수구 신문이다. 수구 신문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져 마땅할 전직 대통령까지 수구 신문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쓰지 않는가. 이미 무력해진 대통령을 아무리 때려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수구 신문을 계속 성역으로 모시면서 이용의 대상으로만 삼겠다면 차라리 수구 신문의 회장이나 사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게 어느 방향으로 가건 효율적인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준만/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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