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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대한 응시 1 (퍼온시)

박기영그대는 한참동안이나 내 뒤에 서 있는 나무였거나 나무의 뒤에 숨어, 울고 있는 숲이었다 빽빽이, 언덕을 덮으며 날들과 함께 슬픔이 자라고 한 잎의 흔들림이 한 숲을 안개로 묻을 때까지 나는 물방울 하나로 맺혀서 물방울 하나만큼의 무게로 아픔 속을 공기처럼 떠돌았다. 생애 전부가 숲에 묻히고, 숲 하나가 한 하늘을 이룰 때까지 얼마나 많은 물방울과 흙들이 뿌리 속에서 남 몰래 뭉쳤다 풀어져야 하는지. 기억이 닿지 않는 어느 선상의 시간에 이르러 씨앗 속에 갇힌 내 몸을 흔들던 바람은 지금 어느 나무가지에서 발생한 중력들로 이루어져, 온 숲을 태양의 입김으로 펄럭이게 할 태풍의 눈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인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 밖에서 땅 위를 걷던 나무들이 아무 산등성이에서나 멈춰 자라나고, 그 나무 끝에서 자라난 아주 투명한 햇살의 한 줄기가 세월과 함께 공기 속을 마음대로 물들이고, 길가 돌들이 일제히 눈떠 내게로 걸어 올 때. 나무의 아들인 나와 풀의 딸인 그대가 만나 한 세상 이루지 못하면 이 땅 그 무엇이 한 하늘을 이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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