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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 찾은 은행나무( 퍼온글)

내게는 고향이 없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런 식으로 고향에 대해 비장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건 내게는 고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고향의 산과 개울, 고향 마을 어귀를 지키는 바위나 고향 앞 바다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나는 넋을 잃고 쳐다본다. 그들의 얘기가 끝나면 나는 꼭 물어본다. “그런데 그게 다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라고. 그들은 나를 보며, 서울서 자란 사람이라 그러려니 이해는 하면서도, 한구석으로는 분위기 깨는 질문을 잘도 한다는 듯 뜨악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는 표정으로. 하기는 산과 개울, 바위나 바다가 사라지는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고향이 없다고 했지만 나라고 태어난 곳이 없을 수가 없다.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서울이에요,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 머리 속 유년의 서울과 성장기의 서울, 그리고 현재의 서울 사이에는 정말 이렇다 할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세계의 도시 중에 가장 단시일에 가장 많이 변한 도시들에 서열을 매긴다면 서울은 그다지 섭섭치 않은 순서에 끼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다 보니 고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최소한 1∼2초는 망설이게 되고 그 망설임 사이로 서로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듯한 몇 개의 스산한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서울의 여러 마을에도 개울이 있었고 커다란 나무들도, 바위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이란 데서 어느 날 개울 한둘 사라지는 것쯤은 일도 아니니, 나무나 바위 같은 것들이야 오히려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그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임은, 꼭 나처럼 서울에서 나고 태어나야만 공감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고향을 잃는 수도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고향 풍경이 하나 둘 변모되어가는 것을 그러려니 하면서 자라다 보니, 이런 삭막함은 그저 바쁜 하루하루의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려 “가만히 앉아 고향을 잃었다”고 읊조려보아야 슬픈 느낌은커녕 야릇한 감흥도 일어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고향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무관한, 고색창연한 단어로 분류되어 나의 사전에서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몇 개의 풍경은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어, 날씨가 좋은 봄날이 되면 나는 내가 살던 동네에 들러 하릴없이 골목길을 거닐어볼 때가 있다. 그것도 일부러라기보다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이 열리는 동네로 변해버려 심심치 않은 횟수로 그곳을 지나치게 되는 탓이다. 사실 느슨한 걸음으로 그 동네를 거닐 때 찾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서 있던 곳의 위치를 나름대로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다. 골목에 나란히 엎드린 집들 앞에 서서 아주 곧고 넓게 가지를 뻗어 무채색의 유년의 골목을 화려하게 변모시키던 한 그루의 노란 은행나무. 그러니 기억 속의 계절은 무르익은 가을이리라. 골목을 다 돌아보아야, 이곳 같기도 하고, 저곳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꼭 누구에게 물을 정도의 궁금증은 아닌 채로, 어쩌다 그곳을 지나치면 어디더라? 하면서 거의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나무의 자리. 그러던 어느 해 나는 서울 근처의 지방 도시에 문학 강연을 간 적이 있었다. 마음이 여유롭고, 소박하면서도 솔직한 열정으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기에 분위기는 따뜻했고, 강연 후의 식사를 위해 몇몇이 모인 자리는 드물게도 화기애애했다. 서로의 얼굴이 어느 정도 익었을 즈음 한 여성이 내 앞으로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강연 후에 활발하게 질문을 했던 내 나이 또래의 한 여성의 얼굴을 나는 사진을 집어들기 전에 유심히 살펴보았다. 혹시 예전에 알던 얼굴을 못 알아본 것은 아닐까 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본 것이 분명했다. 그 여성이 준 사진 속에는 한 소년이 서 있었지만 내 시선을 강력히 끌어당긴 것은 소년 뒤에 보이는 은행나무였다. 내 기억 속에 그토록 아름답게 각인된 노란 은행나무. 아마 사진 속의 소년도 은행의 단풍빛의 화려함에 이끌려 그 앞에 섰으리라. 나는 소년을 잊고 옛 골목의 작은 표시들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했다. 한옆의 축대, 그 축대를 끼고 삼각으로 갈라지는 길… 그렇게 엉뚱한 장소에서 나는 기억 속의 은행나무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으세요?” 여성의 말에 나는 사진 속의 소년 쪽으로 시선을 옮겨 바라보았지만, 오래된 사진 속, 작고 흰 얼굴의 소년은 알 듯도 모를 듯도 했다. 내 표정을 보더니 그 여성은 다소간의 실망을 감추지 않으면서 소년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남편이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다고 하던데요.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구 하면서요.”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하는 것이 내가 사진 속의 그녀 남편이 아니라 마치 그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서운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얼굴은 잊어도 어렸을 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르던 동네 친구의 이름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 이름을 ‘환성’으로 기억하자 여성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이 지펴졌다. 남편의 유년까지 자기 것처럼 나누어 갖는 사랑 깊은 아내의 웃음. 그 웃음에 이끌려 나는 유년에 흔히 경험하게 되는 작은 일화들이 되살아오는 대로 하나 둘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니 사진 속 소년의 얼굴 표정, 목소리, 몸짓이 조금씩 되살아왔다. 이렇게 해서 나는 우연히 내 고향 동네의 나침반격인 은행나무, 이미 잘려져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기억의 따사로운 햇살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은행나무가 서 있던 정확한 지점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은근히 기쁜 일이지만, 무엇보다 어렸을 적의 동네 친구가 마음씨 착하고 사랑 깊은 한 여성을 아내로 맞아 아이들 잘 키우며 살고 있다는 것을 덤으로 알게 된 것, 바로 이것이 두고두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적지 않은 기쁨이었다작자 : 최 윤- 군 사랑에서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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