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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그 시절로 돌아간다

市矯友會 모임이란 전화가 두번이나 왔다.사회에 병든 사람들의 마음을 矯導해 보자 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길이란 그래도 크나큰 기대를 갖고서 들어온 교정직 출신들인 우리....서울 구치소 교도관 출신의 모임...아니 구치소 교도관 하다가 서울시로 전직한 모임..- 김 형 낼 종로구청에 앞에있는 해장국 골목에서 하니깐 꼭 와요..총무를 보고 있는 민 병갑씨의 전화다.그는 교도관은 나보담도 선배지만 서울시에 전직한 것은 더 늦어서 자연히도 서울시에선 나 보다는 한참이나 늦다...공직이란 것이 이상해서 국가에서 봉직했건 지방에서 봉직했건 그 사연은 무슨 소용이란 말인지....ㅡ그 교도관 시절은 말짱 헛일이라 다시 시작하는 형태의 체제라서 서울시에선 엊 그제 들어온 사람들과 경쟁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진급이늦을수 밖에....- 첫 출발이 중요하다...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가 보다.차라리 이럴 바엔 교정직을 왜 지원하고 왜 그런 곳을 갔던것인지...??그 엉뚱한 곳을 들르다 보니 경력은 같아도 서울시 경력이 짧아서 늦게 된 경우가 허다하다.내가 왜 사무관의 위치에 머물지 못하고 헤매고 있단 말인가..억울한 생각이 들곤 한다..이럴줄 알았더라면 차라리...그래 차라리 그 교졍직으로 승부를 걸어 볼걸..그랬다면?적어도 교정관(사무관 급 )은 되지 않았을가?첫 출발이 그렇게 나갔으니깐 그 한우물을 팔걸...왜 전직을 하고 말았던지?어떤땐 은근히 부화가 나고 그런다바보같이도 그 길을 가면 무슨 죽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설치고 그랬으니얼마나 경솔한지...??하긴 그땐 내가 그 정복을 냉정히 벗어 버리고 말끔한 신사복으로 갈아 입고 한번 놀러 갔더니 부러움의 시선으로 쳐다본 그 사람들...그런 긍지가 느꼈던 것도 사실...그런 삶이 싫어서 냉정히 판단하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나온 나그러나 지금의 싯점에서 내가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이냐?왜 내가 사무관도 못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가?무슨 잘 못도 없고 어떤 능력(?)도 뒤떨어진다고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지내야 한단 말인지....차라리...죽기나 살기나 거기서 승부를 걸었다면 이런 위치는 아니지 않은가...- 제복을 입기 싫은 이유와..- 제복을 쓰면 쓰기 싫은 모자를 써야 하고....- 자유주의자인 내가 늘 딱딱한 군기가 살아있는 계급사회의 어떤 부조리한 생활...- 첨엔 재소자를 만나서 敎化하고 선도하는것이 어떤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의 한계와 내가 교화 시킨단 것이 웃기는 짓이다 하는 것을 느끼곤 버려야 했다...그 인간적인 대우와 그런 대접이 상대방은 이용하는 짓으로 변한 쓰라린 경험...그 인간이하의 짓을 저지른 규호와 같은 인간들....그 4년동안의 생활이 염증을 느끼고 더 머물고 있단 것이 무능한 존재로 비쳐지곤 했다그 당시는 어떻든 다른곳으로 전직하여 나가는 동료가 그렇게 부러워 보이곤 했지...- 나도 탈출하리라..나도 저런 사람들 처럼 공부하여 여기서 탈출하여 다른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리라...그렇게 결심하고 그 비좁고 감시 심한 위치에서 책을 본단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도전 하고 드디어 나왔지....- 영광의 탈출...그 당시는 영광의 탈출로 보았지...그 엉뚱한 곳에서 배회한 4 년은 내가 어차피 들어온 공직생활에 엄청난 손해를 갖어온 결과를 초래 했지.....같은 년도에 공직에 투신한 사람들이 공부하고 진급할때 난 그 시험본단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으니.....이런 부조리...왜 서울시 봉사와 경력이 중요하고 다른 곳에서 근무한 것은 그렇게 무시되고 그런것인가?대한 민국의 어디서든 근무했음 인정해 주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은가?그러나 ...그건 내 희망 사항에 불과 했다아무리 발버둥 치고 해도 도저히 할수 없는 제도...남들이 주사 보 시험 볼때에 그 한단계 낮은 서기 시험공부를 해야 했으니....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같은 기회를 주고 그 시험에 떨어지고 진급을 못한단 팔자 소관으로 편하게 지내기나 하지 이건 기회 조차도 주지 않고 그랬으니 얼마나 억울한지?남들은 시험에 관한 책을 들고 학원을 간다 어쩐다 하는데 어디서 굴러운 온 우리들은 그런 기회를 주지도 않았으니.....그 교정직 4 년...신앙촌의 2 년이 내 귀중한 황금시기에 멍들게 하더니 교정직 4 년은 내가 공직에서 출세(?)하는데 발목을 잡은 그야 말로 괴로운 시련기 였다..이런 위치로 굳어 졌다면 난 굴욕을 참고서 딱딱해도 제복을 입고 의젓하게 그런 생활에 적응하면서 살것을.....하긴 출세가 전부인가?그 인간이하의 존재들과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은 인간 말종인 그들..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어딘가 이상적인 문제아들...그런 자들과의 대화는 아무런 보탬도 안되고 늘 그들은 인간이하의 존재로 대해야 한단 것을 난 체험하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대화하고 그들을 자유를 주다 보면 늘 당하는 것은 나였지- 왜 저들을 그렇게 유순하게 다룬것입니까?저들은 저렇게 대하면 힘이 든단 것은 잘 알지 않아요?엄하게 그리고 어떤 인간적인 배려도 저들은 줄 필요가 없어요....저들의 심리는 잘 해주면 기어 오르거든요....- 범털 사방이 어떻고....- 범칙을 어떻게 했고...- 악질적인 죄수는 어떤 놈이고...- 비둘기는 어떤 식으로 날랐으며...- 태진아가 간통으로 들어왔을때에 어떻게 대했다 느니...- 범칙해선 어떤 식으로 분배 했느니...하는 말들.그 호랑이 담배 피던 그리고 교도관은 사회의 이목에서 떠오르지도 않던 그런 시절에 은근히 재미를 붙였던 사람들......우린 현직 교도관같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애기 한다..사람은 지난 추억은 아름다운 법...그 당시는 괴로운 사연으로 점철되어도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처럼 그리워 지는 일들...모이면 그 시절의 애기다...이제는 모두가 머리가 희끗한 나이지만 그런 애기를 할때는 눈동자가 빛난다...그 시절로 돌아가서 입에 침이 튀게 열성적으로 애기하는 교우들...벌써 현직을 그만두고 있는 사람도 있다....이 모임은 내가 애착을 갖고 있는 모임중의 하나다...조금은 독특한 모임...- 아마도 가장 오랜시절을 애기 하는 모임이라 설가?내일은....갔다가 오는데도 한 참이나 걸릴것 같다...광화문까지 가는데도 1 시간은 능히 걸리는 거리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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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868 사랑과 고독, 그리고... 6956 독백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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