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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지 않는 `정의`( 퍼온글 )

태어날 때 이미 사람의 운명은 정해지는 것인가.어떤 땅에서, 혹은 어떤 부모밑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고 거기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텔레비전에 비친 아프간인들의 비극을 보면 저절로 운명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그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이 20년이 넘는 내전을 겪고 있다. 평균수명이 40살에 불과한 나라, 인구의 절반이 전쟁과 기아로 죽거나 파키스탄과 이란등 접경국으로 흘러들어 유민이 된 나라, 단지 그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치도 그 혹독한 운명에서 벗어날수 없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우리는 매일 화면에서 본다. 인간의 생명이 존귀하고 모든 사람의 인권은 동등하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나라 잘못만난 죄로 내일을 기약할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며 그렇게 태어난 것 자체가 운명아니겠냐 애써 외면하는 것은 테러참사의 희생자들에게 그렇게 죽도록 태어난 팔자아니였겠느냐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하다. 미국의 심장부를 겨눈 테러광경을 지켜보며 우리 모두 인류는 아마 이런 식으로 공멸할거란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인류는 서로 공존하지 않는 한 공멸할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공존을 위해서는 나누는 수밖에 없다. 나누지 않는 곳에 정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2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건 2차대전이나 걸프전에서 원인을 찾건 이 모든 증오와 복수의 원인은 그것이 무엇이건 더 많이 가지려는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 국경 민족을 떠나 넘치는 곳의 부를 지독한 결핍을 겪는 곳에 나누어 주며 공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정의는 없는 것이다. 펄벅의 소설을 영화화한 에는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지상의 풀한포기까지 빼앗긴 농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걷고 또 걸어서 어딘가에 부잣집에 도달하면 그들 또한 메뚜기 떼처럼 부잣집을 통채로 들어먹는다.흉악하게 짐승처럼 변한 농민들이 교양있고 우아하게 살던 부자집을 완전히 거덜내는 장면을 공포로 지켜보았었다. 굶주린 이웃나라의 백성 수백만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무작정 국경을 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빈 라덴을 산채로건 죽은 상태로건 잡고 모든 테러지원국으로 의심되는 나라들을 강력히 제압하면 미국은 승리하고 인류가 평화와 질서를 찾고 테러가 지구상에서 사라질가. 아마도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증오는 더욱 깊어지고 더 두려운 보복과 불안으로 지구촌 어느나라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유치원에서 제일 먼지 배우는 말이 페어와 쉐어라고 한다.지구의 한쪽에서 잘 태어난 어린이는 페어와 쉐어를 배우며 정의와 정당함 나눔을 배우면 잘 크는데 한쪽에서는 고사리손에 무기조작법을 배우고 증오를 가슴에 깊게 깊게 새기는 이 불합리를 어떻게 힘으로 다스릴수 있을가. 복수나 응징이 아니라 반성만이 테러참사의 무고한 희생을 값진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더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것을 조금씩 구현시켜 나가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가. 그리고 그것이 단지 내 가족 내 나라만을 위한 것이라며 인간은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다. 어떤 종교도 인류애보다 우선할 수없다. 인류가 공동운명체며 모든 인간이 저마다의 천부적인 생명을 얻은 귀중한 존재임을 일깨우지 않는 종교는 종교라 할수 없다. 빈라덴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그런 테러를 저질렀다해도 그가 주모자라면 그의 신이 무고한 생명을 뻬앗은 그를 용서할리 없다. 또한 미국이 아무리 정의와 정당방위를 외친다 하더라도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다면 미국인들이 믿는 신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 김선주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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