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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퍼온글 )

실망도 지쳤다. 이젠 애처롭다. 한 여성운동단체 대표의 `조용한 분노'다. 누구를 겨눔일까. 김대중 정권이다. 재·보선 결과는 기실 예견된 일이다. 더러는 영남표 결집을, 더러는 충청표 이탈을 거론한다. 수구언론의 전면보복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개혁대상과 개혁세력 두루 김 정권을 비판하는 오늘이 과연 지역감정이나 수구언론 탓만일까. 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정체'가 이미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던가. 개혁을 늘 부르대되 온전히 이루어내는 개혁은 전혀 없다. 언론사 세무조사도 고비를 맞았다. 세무조사를 앞뒤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서터구털 내뱉은 흰소리가 기자의 책으로 폭로됐다. 예의 가 대서특필했다. 한나라당도 언론탄압의 증거라며 득의에 차 있다. 취재원과 으밀아밀 나눈 술자리대화를 새삼 지금 공개하는 것이 과연 기자로서 온당한 처신인가라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취재윤리 차원을 넘어섰다. 언론탄압의 음모가 드러났다는 환호성이 들린다. 최대피해자는 언론개혁운동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서다. 밑절미와 곁가지를 마땅히 구분할 때다. 언론개혁의 역사적 정당성이 `동교동정권'의 천박성으로 훼손될 순 없다. 본 칼럼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언론개혁의 주체는 김 정권이 아니다. 분명히 해두자. 정치권력에 언론개혁을 주도해 달라고 청원한 언론운동단체는 아무도 없다. 언론개혁 법제화에 동참을 촉구했을 뿐이다. 뒤늦게나마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갔을 때 언론개혁 세력이 굳이 그 의도를 따지지않고 지지했던 까닭이다. 한나라당이 딴전을 피우고 있지만, 언론개혁운동의 주체들은 김영삼 정권에도 세무조사 공개와 법적 처리를 촉구했다. 김대중 정권은 탈세를 공개하고 사주를 구속했다. 하지만 정작 개혁의 고갱이인 정기간행물법 개정에 열정을 보이진 않았다. 탈세사주로부터 편집의 자율성을 확보할 당위성을 온 몸으로 설득하고 정간법을 개정하려는 정치의지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언론사 세무조사를 한낱 정권 차원에서 바라본 `청와대 실세'의 경박한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정작 언론개혁을 힘있게 추진할 시점에 김 정권이 우물쭈물 마침표를 찍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무릇 모든 개혁정책은 치밀한 사전 준비와 과감한 추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김 정권에게는 정책의 이름에 값할 만한 언론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언론정책은 없는 것이 민주적이라는 착각에 대통령부터 매몰돼 있다. 하지만 유럽의 주요정당들은 대부분 언론정책을 갖추고 있다. 언론개혁에서도 그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이 땅의 대통령을 꿈꾸는 여·야 정치인들이 곰곰 되새겨 볼 대목이다. 절망의 끝에선 희망이 움트기 마련일까.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민주언론인들과 민중이 터울거려온 언론개혁운동은 새 길을 열어가고 있다. 보라. 조선일보의 오만한 권력은 시나브로 이울고 있다. 어둠 속에 똬리 틀고 있던 신문사주들의 정체가 독자들에게 드러났다.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종교인과 대학인 그리고 노동자들 속으로 전국 곳곳 깊숙이 퍼져가고 있다. 큰 변화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가운데 노무현 최고위원처럼 언론개혁에 또렷한 소신을 밝히는 정치인도 나왔다. 두 당으로 갈려 진보를 꿈꾸는 민중에게 아쉬움을 주고 있지만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두루 언론개혁에 적극적이다. 사상의 자유와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권익을 부정하는 언론을 개혁하는 운동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 이 땅에 구현되는 그날까지 언론개혁운동은 자신의 길을 걸어갈 터이다. 역사를 일궈가는 그 강파른 길에서, 청와대 실세의 허튼 수작은 원내 1당의 탈세사주 비호가 그러하듯 길섶으로 밀려날 `애처로운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길섶에 쌓이는 걸림돌은 그만큼 새 길이 열림을 뜻하지 않을까. 손석춘의 여론읽기(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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