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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딸의 일기장에 비춰본 나의 친구(퍼온글)

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의 일기장을 보고 웃은 일이 있다. 친한 친구와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기 위해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커플반지를 나눠 끼고, 한 번 깨진 우정은 다시 잇기 힘드니까 우정이 깨지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그때가 참 좋은 것 같다. 자기 속마음을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친구에게 내보일 수 있고, 또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자신들의 우정이 변하지 않고 영원할 것 같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은 성장하면서 이기적으로 변해 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물질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터득해 가는 만큼 자신의 감정을 감추며 살아간다. 더구나 `나'를 떠나서 `우리'라는 공간에 자신을 소속시킬 때는 더욱 이기적으로 된다. 며칠 전에 남편의 사업부도로 인해 보험설계사를 하게 된 친구에게 남편과 상의도 없이 보험을 계약한 일이 있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온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안 좋아했다. 보험이란 일단 해약을 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나도 7년이란 기간을 해약하지 않고 넣을 수 있을지 불안하던 참에 남편의 말을 듣고 그 친구에게 해약하겠다는 전화를 넣었다. 그랬더니 농담반 진담반 해약하면 우리를 안 본다고 하는 것이다. 순간 우리 처지를 이해해 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일면서 찜찜한 밤을 보냈다. 그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이기적 생각으로 그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을 들게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이제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친구들을 떠나 살면서,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친구가 가장 힘들어 할 때 어깨를 더 무겁게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요즘은 사람과의 관계도 물질에 따라 저울질되어 가는데 문득 딸아이의 일기장을 보면서 그 친구가 생각났다. 우리 딸들처럼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기에는 늦은 나이지만,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세 딸을 잘 키우며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질이 만능인 시대지만 그래도 그 물질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김한다. 김현주(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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