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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삶과 죽음


  직장에 출근하자 마자 열어본 게시판..
그곳엔,
경사와 애사가 늘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늘 그렇게 양면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 기쁨과 슬픔.
환희와 뼈를 깍는 아픔...


어쩔수 없는 우리의 숙명같은건지 모른다.
우리들이 피할수 없는 숙명...


요즘은,
결혼같은 경사 보담은, 哀事가 더 많다.
계절 탓일가?


어젠,
전 구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이 모씨..
그가 찾아왔다.
애사를 알리려 하기 보담은,
이대 목동병원 영안실이 바로 직장 근처라 차 한잔
하러 온걸거다.


-어제 오후에 장모님이 돌아가셨어요.

한 3 개월 병원에 계시다가.....


이모씨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렵게 시골에서 고등학교나와서 방통대 졸업하더니
또 다시 경희대 대학원까지 어렵게 졸업한 사람이다.


이 정도는 노력만 있음 할수 있는건지 모른다.
허지만,
그 당시의 이 사람의 위치는,
도저히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 되었다.
그의 아내가 시장에서 기성복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사흘이 멀다하고 새벽 남대문 시장에 물건을 사 와야
하는 벅찬 스케줄..
또 낮엔,
공직에 몸 담고 업무 처리를 해야 했고...


그런 와중에서도 늘 책을 놓지 않았던 그..
같이 근무했을땐,
늘 오후엔 사무실 뒤켠에서 낮잠을 한숨씩 돌리곤 했던 그
상사들도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
잠을 충분히 잘수 없다는 그의 현실을 인정하고 도와 주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렇게 어려운 날들을 보냈다.
그가 대학원 졸업한 날,
우린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고 그의 식을줄 모르는 학구열을
박수쳐 축하해 주었다.
< 인간 승리 > 같은 그의 열정에....


아내는,
기성품 옷을 파는 가게에서,
이씨는 현재의 위취에서 공부에 몰두하던 모습.
그렇게 조금은 아내가 가게에 몰두 할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장모덕이 컸다.
집에서 온갖 어려운 일을 보살펴 준 장모의 덕..
그런 장모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다.


- 우리들이 한푼 두푼 드린 용돈.
그걸 쓰시지도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병실에서 주시지 뭐요
그것도 5000 만원이나.........
영안실에 갔더니 이 씨가 그런다.
자기의 모든것을 다 주고도 그 용돈마져 주시고 훌훌 생의
날개를 벗어 던진 그 장모..
위대해 보였다.


- 82세의 장수와 비교적 병원에서 편히 계시다가 별세했지만.
영안실 분위기는 전혀 슬픈 모습을 볼수 없었다.
어쩜 홀가분한 기분인지 모른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시다 가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많이 슬프죠?
-그래도 당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셨으니, 서운한것 같진 않아요..
3 개월 입원동안 제가 너무도 고생을 했고, 지쳐선지
눈물도 나오지 않네요....
언니나 동생들은 울고 그러는데 저는 눈물이 나오지 않데요..
이씨의 아내의 진솔한 대답.
그게 진심인지 모른다.


그런걸까?
병원에서 3 개월이 오래되었단 것인가?
자기를 위해 궂은일 마다않고서 도와준 엄마..
헌데 3 개월 힘들게 했다고 슬프지 않다니....
그 정도 천수를 누렸으니 슬프지 않단 말인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가셨는데 홀가분한 기분인가..
영영 볼수 없는 영원한 이별인데도.....
나도 그런 기분일까?
숙연하고 슬픈 표정에 잠겨 있어야 하는 영안실..
산자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텐데....


소란스럽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좋아 뵈지 않았다.
이 보다 더 슬픈 날이 언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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