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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시절


  
경기 대학교 뒤편 산에 있던 서민 아파트..
< 금화 시민 아파트 >는 김현옥 시장시절에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산에 지은 아파트다.

개발독재시대에 ,
탱크식으로 밀어 붙인 주택정책.
< 브르도져 시장 >이란 별명이 말해 주지 않는가.
그 덕에 산아래 많은 아파트가 지어졌고 서울의 주택난이 많이 해소된건 사실이겠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한 난 개발과 자연 훼손도 많았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난 지난 날의 추억에 젖곤한다.
충정로를 지나, 서대문 로터리에 이르기전에 좌측으로 바라보면
눈에 들어오는 금화 아파트.
자연 녹지로 환원되어 나무들이 심어져 있긴 하지만,
아직도 몇채는 쓸쓸히 서 있다.

달랑 방 두개에 부엌과 공동 변소가 있는 곳이긴 하지만....
난,신혼 생활을 거기서 시작해서 감회가 각별하다.
첫 딸 영란이도 거기서 낳아서 이곳으로 델고 온 것.

높은 금화산에 지어진 아파트라 거기에 오르면 저 멀리
남산과 무악제와, 정동이 눈에 들어오는 곳.
여름이면 얼마나 쉬원한지 선풍기가 필요없었지.

식사하곤.
그 뒤로 오르면 연세대로 넘어가는 산이 나오는데,
우린 가끔 산책하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물도 길러오는 것을 보기도 했다.

토요일이면 물건 값이 싼 영천시장에서 한 보따리 먹을거
사갖고 올라오고, 시장 구경함서 올라오는 재미도 좋았지.
< 영천시장 >은 재래시장으로 아마 근방에선 그 만큼 큰 시장도
싼 시장도 보지 못했다.

< 대성 여관 >주인은,
홀로 사는 과부였다.
허지만, 자녀들의 교육에 지장이 있을 가봐 애들은 다른곳에서
살고 영업만 하곤 했지.
-여관이란, 참 쉬운 돈벌이죠.
이건 나이 젊어선 안되도 나 처럼 한 쉰 정도 되면 할만한
것이 이런거 같아요.
한번 투자하면 들어갈게 없으니까.....
오랜 영업을 해본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애기 해 주던 그 아줌마.
참 좋은 분였지.
그때와 지금은 영업 방식이든 전략이 엄청 달라졌으니,
그걸 대입한단 것도 좀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아줌마의
말이 가슴에 닿곤 한다.

전세 살든,어쩌든 교통을 최우선 조건으로 삼았던 나.
늘 교통은 편리한 곳에 살았다.
행촌동은, 바로 버스 정류장 옆이라 얼마나 소음에 시달렸던가?
24 시간 앵앵 거림서 달리던 차들.....
그래도, 아침에 사직공원에 올라가 심호흡을 하곤 했다.
상당히 부지런했던 모양이다.
신혼였는데도.....

강서구로 오기전엔,
서대문에서 뱅뱅 돌았다.
거길 떠나면 살수 없는 물고기 처럼......
현저동, 영천동,옥천동, 천연동, 충정로동 행촌동 등등..
눈을 좀 멀리 바라봤어야 했는데...

가끔 부모님이 서울역에 내리시면 걸어서 오실수 있는곳.
-니네 집은 가기 편해 좋더라.
차도 안타도 되니......
하시던 어머님.
당신은 멀미 땜에 차를 타시길 싫어한 탓이다.

하릴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터벅 터벅 걸어서 종로나
을지로까지 갔지.
걸어서 가도 금방인 거리였다.

운동하지 않음 꼼짝도 하기 싫다.
나이든 탓일까?
시장이든 기웃거리고 다닌단 것이 왠지 싫다.
볼썽 사나운 모습처럼......
< 서대문 시절 >
너무도 그리운 시절이다.

다신 돌아가지 못함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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