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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살기




서양사람들은 어지간히도 벼룩에 시달리며 살았나 보다.

영국과 미국 속담에는 “벼룩을 잡을 때 말고는 서두르지 말라”는 게 있다. 이탈리아에도 “서둘러서 좋은 것은 병 치료, 싸움 그치기, 벼룩을 잡을 때뿐”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런 속담은 “빨라서 늦다”는 서태평양 팔라우공화국의 속담처럼 서두른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둘러 한 일은 나중에 땜질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기보다 천천히 달리게 하라.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수 있으니까”라는 캄보디아의 격언도 같은 뜻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번진 느리게 살기운동이나 패스트 푸드에 대항하는 슬로 푸드운동은 스피드와 경쟁 위주의 삶을 이렇게 천천히 달리는 삶으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1986년 로마에서 일어난 슬로 푸드운동은 3년 뒤 파리선언을 기점으로 확산됐다. 회원들은 이제 식사 차원을 넘어 농민과 토지 등 생태문제로까지 관심사를 넓혀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삶의 영유와 마음의 안정에 가치를 두는 슬로비족(slobbie: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이 늘어나고 있다. 독립적 자연생활을 실천한 스코트ㆍ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도 각광받고 있다.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모든 것을 ‘빨리 빨리’만 해 왔다.

그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이룩했으나 심신은 황폐하다. 한유한 풍류정신은 예로부터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양반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치부됐다. 느림은 곧 게으름이며 게으름의 결과는 가난일 뿐이었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지 않았던가. 특히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혼자 있는 것을 백안시해 소인한거위불선(ㆍ소인은 혼자 있으면 나쁜 짓을 한다)이라는 경구와,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는 신독의 자세를 강조해 왔다.

 

 

■그런 한국에서도 느리게 살기운동이 시작됐다.

문화인들이 세운 느린문화학교도 9월1일 개강한다. 느리고 작은 것의 올곧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곳이다. 느린 것과 게으른 것은 어떻게 다른가.

 

신부였던 데이비드 J 쿤다츠는 ‘멈춤’이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은 느리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혼자 보내기, 휴가 때 집에만 있기와 같은 멈춤의 삶을 권하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한거의 위선을 지향하며 휴지와 여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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