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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와 지금


  
1966 년 3 월 11일.
바로 오늘였지.
그 당시만 해도, 시골 촌놈이 서울에 온단 것은
어지간한 포부(?)가 아니람 어려웠지.

하긴 경기도 부천시 소사읍 범박리가 어디 서울인가?
겅기도 부천시 소사읍 범박리 14 번지.
그게 신앙촌의 주소다.
서울서도 한참가야 하는 시골.
< 유한 공고 >가 바로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점이 있었고....
해태상이 보이고,
-여기서 부터 경기도 입니다.
모처럼 서울 외출 나왔다 들어가기 아쉬운 서울의 경계점
그 잊을수 없는 유한 공고,
거길 세현이가 다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어마 어마한 부천시로 변했지만...
당시는,
봄이면 분홍의 복숭아 꽃이 눈을 부실정도로 온통
꽃으로 수 놓던 소사 신앙촌.
오만 제단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모두가 연분홍 빛였던 복숭아 고장.
-지금도 소사엔 복숭아가 유명한가?
-성환 참외, 소사 복숭아, 나주 배 등등.
초등학교 자연책엔 유명특산물이 으레껏 나열되었었지.

-말끔히 단장된 도로.
-한상처럼 보였던 오만제단의 은은한 찬송가
-어딘지 성스럽게 까지 보였던 신앙안의 사람들.
첫 발을 디딘 소감은 무척 좋았다.
< 그래,여기서 신앙안에 성실히 앞날을 개척하자..>

그 전,
집을 떠나서 서울 매형집에 딱 한달간 머문것 빼곤
처음 나들이였다.
그게,
내가 집을 떠나 지금껏 방랑자 같은 생활을 하게 된 계기
되었던 신앙촌.
고향 떠난게 지금껏 돌아가기 못하고 있다.
영원한 에뜨랑제..

학교 갓 졸업한 촌 놈.
어딘가 촌 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
그래도 범박리 비닐루 공장 다님서 알게된 최 상범이와
찍은 둘의 사진은,
< 에덴 사진관 >에 내가 떠나올때 까지 잘 뽑혀진 사진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어딘가 멋을 잔뜩 내서 찍은 거지만.....
그래도 멋이 있었던가 보다.

겨우 2 년간 머문 신앙촌.
왜 그렇게 긴 여운을 남기고 잊혀지지 않을까?
< 방황의 계절 > 였을거다.
방황과 가치관의 혼돈에서 신앙촌 할머니의 손짓은
비상 탈출구 같은 거였다.
-어디든 떠나야 한다.
이 궁벽진 농촌은 내 꿈을 펼치기엔 부족하다.
거창한 꿈,허지만 그게 실현은 요원해 보였고...

-어떤 비상구를 원하던 그 방황의 계절과...
어떤 일의 끝을 맺고 새로운 탈출구를 시도하는 지금.
어떤게 다를까?

가진것 없었어도 젊다는 것과 늘 꿈이 꿈틀대던 그때와..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 정열조차 시든거 같은 지금....
-이런 식의 삶은 안된다.
그게 공통점일까?

오늘 황사가 뿌옇지만,
모든 번민과 잡념을 털고 옛 경인가도를 달려 그곳 신앙촌.
그리고,
오만제단에 올라 멀리 소사쪽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경인선 열차가 드문 드문 서 있는 농가 사이로 한가하게
달리던 모습을 볼수 있을까?
하늘을 가릴듯한 고층 아파트가 그때의 그곳 조차도 분간
못하게 하고 말거다.
짐작으로만 알겠지.
-저기가 소사 삼거리, 그리고 소사극장.
< 월하의 공동묘지 >를 준자와 함께 봤지.
-저 뒤로 경기화학자리고.....
-범박리 고개 넘어 가면 계수리가 나오고..
포도밭이 줄지어선 계수리....
영숙일 데려다 주던 그 고개, 늙은 소나무.
그대로 있겠지?

왜 지난날의 기억들은 그렇게도 눈물겨웁게 그리울까?
지금도 신앙촌에 들어서면 엿 공장의 달짝지근한 엿 냄새와
카스테라 냄새가 코에 스밀거 같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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