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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신앙촌 친구

-야 잘 있었어?한번 얼굴 보자는데 왜 안와?-그래 간다 하면서도 게을러져서 그래.멀기도 하고...

사회 첫 출발근무지로 선택했던 <c.t안내 사무소>거기서 비슷한 연령대로 함께 근무했던 <임광>낮에는 안내원으로, 밤에는 경비원으로 두가지 얼굴로 근무했던 우리들.갑과 을반으로 나눠 근무했는데 한반에 15명 정도?

낮엔 사무실에서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데리고 신앙촌 곳곳을 다님서 안내와 홍보활동을 해서 우린 신앙촌 얼굴같은 존재들이라 선발 기준이 폼과 인물과 학력을 보곤선발해서 같은 촌내 사람들도 우릴 함부로 못했다.-박태선 장로의 근위병 정도?

신앙심이 돈독해야만 입촌할수 있었지만 이모할머니의 돈독한 신앙심을 높이 사서패스.

겨우 2년간의 신앙촌 생활,한참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뭣인가 움직여야 하는 마당에 겨우 신앙촌에서안내원 이나하고 있었으니 무슨 미래가 보장 되겠는가?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겨우 밥값이나 하고 있었으니...

군입대와 동시에 회의에 사로 잡힌 생각.-그래 내가 미쳤지.무슨 희망을 바라보고 거기서 머문담?뭣인가 이룰수 있는 꿈을 찾아가야지.<신앙인>으로 성공은 이미 물건거 간것.전도사 같은건 취향에도 애당초 마음에도 없었지만...이모할머니는, 늘 그  안에서 머물길 바랬었다.


군 제대와 함께 거긴 한때 머물던 곳이었지만...2년간의 거기 생활이 군생활과 더불어 내 인생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의미있는 곳.

시디 11동 6호의 이모할머니 집.단층의 작은 공동주택.겨우 11 평의 사택.안내원 생활전에 한때 머물던 나의 공간.

신앙촌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임광>이나 만나 그 시절을 그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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