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일기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에 남겨진 공허함

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역시 사람들이 하는 말 틀린 거 없었습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스스로에게 되돌아옵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볼 일은 다 겪어야지, 생각했는데 다 선이 있는 법입니다. 선을 넘어간 경험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약이나, 살인이나, 범죄나, 그런 것들에 비해서 한참 낮은 것이지만서도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습니다. 

방금 막 애인이 아닌 사람과 자고 오는 길입니다. 물론 애인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애인에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이 불타 답답할 정도로, 미칠 정도로 허하고 외롭습니다. 

참 웃긴 게, 외로움을 달래려고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그것은 정답이 아닌 선택지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오는 것 같아요. 몸이 산산히 부서져 조각나는 느낌만 남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왜 내가 첫 번째 선택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냥 무지하고 오만하고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난 지 3번째입니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애인이 있다고, 너랑은 잠만 자는 사이라고요. 그쪽에서도 똑같은 답이 메아리쳐 돌아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는데, 왜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조차 못했을까요. 왜 나는 오만하고 거만하게도 많은 사람들을 푹 빠지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고 다니나요. 그저 멍청한 속마음이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지인들 중에 안 자본 사람이 없더군요. 내심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저게 내가 엄선한 사람이라면 무언가 많이 잘못된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아는 언니, 오빠, 형, 누나 전부가 언급되는 걸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망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나는 왜....

더럽혀진 느낌이 들었으나 무어라 반박하겠습니까. 스스로 흙탕물 속에 들어와놓고 이제 와서 퉤퉤 입을 털며 나가면 뭐합니까. 머리칼은 흙더미 속에 젖어 나를 옮아매고 있고, 살점들은 알알히 진흙 속에 새겨서 나를 울부짖고 있는데. 

이제 나갈 길은 없습니다. 한 번 빠진 사람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조만간 그 사람을 다시 만나 얘기를 해보아야겠어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도 멀쩡한지, 아니 이미 이 말을 쓰면서 알았네요. 한 사람을 만나는 동안 마음만으로는 흔들린 적 없고 그저 다른 사람들은 몸만 보고 다가갔다는 말을 들었었네요. 어떻게 가능하냐고 뇌를 해부해보고 싶은 심정 뿐입니다. 정말 다른 세계 사람 같아요. 나는....

뭘 해야하지?

그저 평소처럼 몸을 섞으면 되는 일 아닌가?

가볍게 생각합시다. 속이 좀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스스로 내던진 몸, 더는 간수할 생각 말고 쉽게 삽시다.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 

무더운 날씨 속으로 아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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