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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고통이란 것이 언제쯤 힘듬으로 변하지?

 고통은 힘듬과 대간함의 가장 큰 시발점이다.

그런데 고통, 통증등이 그 것 자체로써 우리에게 큰어려움이나

나의 넘지 못할 한계점을 줄 때도 있지만 그 것 자체가 우리에게

삶의 낙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아프다는 것은 힘들다.

나의 현재의 과정의 생각을 통틀어서 바꾸어 놓는다.

내가 쌓아 왔던 과정의 감정을을 모두 제로 포인트로 만들어 놓고

내 주위의 가까운 사람 혹은 내가 편한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씌어

버릴 때가 많다.

 이것은 대체적인 현상이다. 대체적이란 말은 대부분의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감정을 누구인가에게 전이 시키고

그것을 삶에 대한 정의로 만들어 버릴 때가 많이 있다. 참 인간의

인간의 한계점일까?

 

 좀 세분해서 분석을 해 보자면 이 고통이란 감각이 쉽게 잊혀지는 감각

이 아니다. 또한 이 고통이란 것은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순간

이나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에 이 고통은 덧붙여서 나타날 때가

많다. 이건 무슨 현상일까?

 

 말 그대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순간에 꼭 따라다닌다는 말이다.

또 그 중요한 순간이 지나가면 그 고통의 감각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 후의 진행절차에 있어서 그 다음의 쉼의 시간으로 작용하게 한다.

 

 말 그대로 자신의 굴곡을 조절하고 그 고통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나 ? 그 쉼의 시간 다음에 나타나는 그 익숙한

고통으로 자신을 자책하거나 자신의 시간을 아껴쓰지 못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못하고 부러움이나 시기심을 조장 할 때가 많다.

 

 이 고통에서 나오는 시발점 같은 우리의 나쁜 감각들과 자책 시기심

등등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순간의 정의 등등 참 이 고통이란

판도라의 상자 안의 희망이자 또한 그 안의 어두움과 악마를 모두 총칭한

것이 고통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쉼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고통을 안고 죽음에 나간다는 말이 있다. 고통안에 우리의 생이

무엇인가 우리의 삶과 큰 연관이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의 상충안인 고통과 삶의 관계를 폭넓에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죽을 각오로 무엇인가를 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이 없다." 란 말 말이다. 하지만 고통을 더하면 더할 수록 자신의 감각이 무뎌지고 자신의 방향과 다른 나의 삶을 산다. 이것은 대체적인 경향이다.

 이런 방향을 이해 하고 자신의 감각을 폭넓게 이해하고 감각을 받아드리고 더 큰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는 기본이 필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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