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가을비가 내리고 맞이하는 10월 셋째 주 아침,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몸과 마음이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입고서 활동했던 편한 옷에 가을 콤비를 걸치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기위해 길을 걷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바와 코트를 걸쳤다. 나만 아직도 가을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여름 한철 예쁘고 아름답게 반겨주었던 하얀, 분홍, 자주색의 무궁화 꽃이 언제 사라졌는지 시간의 흐름을 되돌려본다. 30도를 오르내리던 무더위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계절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중간에 변함없이 다가와 있다. 우연히 무궁화 꽃을 생각하다보니 그리운 엄마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아련하여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나만 그런 건가 아니며 다른 타인들도 그럴까?
초등학교 3~4학년 때 정말 어렵게 살았다. 무궁화 꽃이 피는 계절이 여름철이다보니 아마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비가 세차게 퍼부었던 어느 여름 날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여 하늘은 검붉은 파도처럼 어두워지고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동반한 천둥과 번개가 금방이라도 우리를 삼킬 것처럼 으르렁 거렸다. 유리창으로 바로 보는 그 날도 담장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둘러서있는 평범하지만 하얀, 분홍, 자주색의 고혹한 무궁화 꽃 위에 하나 둘 빗방울들이 떨어지더니만 조금씩 굵어지고 어느새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우두둑 우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워졌다. 숨을 곳을 찾아 방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에는 여름철 천둥 번개가 칠 때 사람들이 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린 나이의 나는 그게 현실인 것처럼 공포로 다가왔다. 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어머니는 여리고 무서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나를 편안하게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개떡을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때 먹었던 보리개떡의 추억은 지금은 찾아볼 수도 먹어볼 수도 없지만 요즘의 호떡이나 쑥떡처럼 맛이 있었다. 선조 임금께서 도루묵을 은어 맛으로 착각하였듯이 그 때 그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선조 임금처럼 배고팠던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분이셨을까? 그녀는 5월의 탄생석 에메랄드 행복한 아내를 의미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5월에 태어나 생일을 하루 앞두고 5월의 대지의 여신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어머니를 만나로 떠나는 고향길 5월의 고속도로는 높게 솟은 파란 하늘과 좌우 일렬로 세워진 초록의 나무들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어 지루하지 않고 기분 좋은 여행을 동행할 수 있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어느 추석 전날 어머니께서는 재래시장에 들러 꼬까옷을 한 벌 사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그 옷을 보물 다루듯이 소중하게 다루어 학교 갈 때만 입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옷걸이에 걸어 보관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옷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항상 소중하게 보관하고 정결하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는 잠바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아 잘 입지를 않는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사계절을 정장을 하였다. 지금은 편하게 입으려고 케쥬얼하게 입고 다닌다.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편하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오늘 나는 가을의 길목에서 오래전 잃어버렸던 무궁화 꽃을 만남으로 엄마를 추억 속에서 불러내었다.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엄마의 희미한 얼굴과 항상 기다려주고 믿어주었던 엄마의 그 마음과 손길을 아련하게 그려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오는 것을 마음에 담아본다. 조금 쌀쌀한 기온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담아보니 춥다는 생각보다는 따뜻하고 포근한 늦게 퇴근하여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아랫목에 넣어 두었던 밥을 내놓으며 저녁을 먹으라고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들 밥 먹었어. 배고프겠다. 밥 먹고 자거라”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주 가을비가 내리고 맞이하는 10월 셋째 주 아침,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몸과 마음이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입고서 활동했던 편한 옷에 가을 콤비를 걸치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기위해 길을 걷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바와 코트를 걸쳤다. 나만 아직도 가을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여름 한철 예쁘고 아름답게 반겨주었던 하얀, 분홍, 자주색의 무궁화 꽃이 언제 사라졌는지 시간의 흐름을 되돌려본다. 30도를 오르내리던 무더위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계절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중간에 변함없이 다가와 있다. 우연히 무궁화 꽃을 생각하다보니 그리운 엄마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아련하여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나만 그런 건가 아니며 다른 타인들도 그럴까?
초등학교 3~4학년 때 정말 어렵게 살았다. 무궁화 꽃이 피는 계절이 여름철이다보니 아마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비가 세차게 퍼부었던 어느 여름 날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여 하늘은 검붉은 파도처럼 어두워지고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동반한 천둥과 번개가 금방이라도 우리를 삼킬 것처럼 으르렁 거렸다. 유리창으로 바로 보는 그 날도 담장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둘러서있는 평범하지만 하얀, 분홍, 자주색의 고혹한 무궁화 꽃 위에 하나 둘 빗방울들이 떨어지더니만 조금씩 굵어지고 어느새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우두둑 우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워졌다. 숨을 곳을 찾아 방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에는 여름철 천둥 번개가 칠 때 사람들이 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린 나이의 나는 그게 현실인 것처럼 공포로 다가왔다. 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어머니는 여리고 무서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나를 편안하게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개떡을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때 먹었던 보리개떡의 추억은 지금은 찾아볼 수도 먹어볼 수도 없지만 요즘의 호떡이나 쑥떡처럼 맛이 있었다. 선조 임금께서 도루묵을 은어 맛으로 착각하였듯이 그 때 그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선조 임금처럼 배고팠던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분이셨을까? 그녀는 5월의 탄생석 에메랄드 행복한 아내를 의미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5월에 태어나 생일을 하루 앞두고 5월의 대지의 여신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어머니를 만나로 떠나는 고향길 5월의 고속도로는 높게 솟은 파란 하늘과 좌우 일렬로 세워진 초록의 나무들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어 지루하지 않고 기분 좋은 여행을 동행할 수 있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어느 추석 전날 어머니께서는 재래시장에 들러 꼬까옷을 한 벌 사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그 옷을 보물 다루듯이 소중하게 다루어 학교 갈 때만 입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옷걸이에 걸어 보관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옷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항상 소중하게 보관하고 정결하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는 잠바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아 잘 입지를 않는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사계절을 정장을 하였다. 지금은 편하게 입으려고 케쥬얼하게 입고 다닌다.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편하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오늘 나는 가을의 길목에서 오래전 잃어버렸던 무궁화 꽃을 만남으로 엄마를 추억 속에서 불러내었다.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엄마의 희미한 얼굴과 항상 기다려주고 믿어주었던 엄마의 그 마음과 손길을 아련하게 그려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오는 것을 마음에 담아본다. 조금 쌀쌀한 기온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담아보니 춥다는 생각보다는 따뜻하고 포근한 늦게 퇴근하여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아랫목에 넣어 두었던 밥을 내놓으며 저녁을 먹으라고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들 밥 먹었어. 배고프겠다. 밥 먹고 자거라”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