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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째
김대중 정권의 정체(퍼온글)
온 눈, 온 귀가 미국으로 쏠렸다. 마치 미국이 조국인 듯 부르대는 `친일 민족지'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조기게양·묵념 따위로 미국의 `꺾인 콧대'를 걱정할 때일까. 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한계가 또렷이 불거진 오늘, 조국의 내일을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기실 김 정권의 성격은 모호했다. 수구언론의 색깔공세를 거들 생각은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다. 역설이지만 수구언론의 색깔론으로 정치인 김대중은 과대평가 받기도 했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로 재야세력이 갈라진 것도 그의 두리뭉실한 정체성 때문이다. 6월항쟁 뒤 불붙은 진보의 정치세력화에 그는 늘 큰 변수였다. `젊은 피'가 상징하듯 적잖은 진보세력이 김대중의 구심력에 끌려 갔다. 결과는 무엇인가. 보수·수구일색에 더 견고해진 지역정당 구조다. 2001년 초가을, 김 정권은 임동원 장관 해임안 표결로 자민련과 갈라섰다. 앞으로 국회 다수의석에 연연치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여적 김 정권에 미련을 지닌 사람들은 선걸음에 이제야말로 `김대중 정치'를 기대했다. 총리·당대표·비서실장에 색바람을 예상했다. 그 여론을 미련하다고 조롱이라도 하듯 김 대통령은 이한동 총리를 눌러앉혔다. 당대표엔 한광옥 비서실장을 보냈다. 눈가리고 아옹했지만 새 비서실장이 사실상 박지원 수석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개각은 또 어떤가. 개혁적이거나 참신한가. 아니다. 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지청구는 제발 접기 바란다. 겨레의 내일을 위해 오늘은 한국정치에서 `김대중 변수'를 미련없이, 단호하게 폐기할 때다. 김 정권의 실체가 어떻게 더이상 확연히 드러날 것인가. 그를 진보정치인으로 여든 댄 일각의 논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것은 진보정치에 대한 모독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김대중 이후다. 한국정치에서 맨해튼의 쌍둥이 건물처럼 서있던 두 김씨의 신화는 연이어 무너졌다. 기실 두 김씨는 30년간 민중의 사랑을 과분하게 받아왔다. 두 김씨의 과오까지 두남두며, 영·호남 갈등의 골까지 파가며, 두 김씨를 지지했다. 두 김씨가 대통령이 된 뒤, 우리는 사랑의 허망감을 시나브로 깨닫고 있다. 보라. 김영삼의 민주·통일의식이란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가. 그의 실패로 김대중 정권이 등장했을 때 민주시민들의 마음자리는 조마로웠다. 김영삼 뒤엔 그래도 김대중이 있지만, 만일 그의 개혁도 박타면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물론 정치군부의 숙정이나 남북정상회담은 허투루 볼 수없는 `치적'이다. 하지만 두 김씨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그것만은 그예 아니었다. 국가보안법은 되레 서슬 푸르고 노동현장에 이어 교육현장에도 신자유주의가 몰아치고 있다. 한 김씨의 무능이 합당 때문이 아니듯, 다른 김씨의 그것도 자민련이나 수구언론 탓은 아니었다. 김 대통령 자신이 `참 여론'과 함께 할 결연한 의지가 없다. 한국정치의 풍경화가 을씨년스런 까닭은 그렇다고 미더운 야당이 존재하는가에 있다. 1970·80년대에는 그나마 두 김씨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야당의 얼굴은 누구인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다. 수구언론의 여론몰이에 질질 끌려 다니는 그가 민중에게 희망일 수 있을까. 보수·수구정객들이 곰비임비 무능과 구태를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오늘, 그럼에도 저마다 대통령을 소락소락 넘보며 신문 정치면을 독점하고 있는 오늘, 묻고싶다. 우리는 언제까지 구경만 할 것인가. 한국정치는 벅벅이 저들만의 잔치일까. 민주와 진보를 갈망하는 모든 이를 묶어세울 정치는 과연 이룰 수 없는 꿈인가. 무릇 모든 새벽은 캄캄한 밤에서 터 오기 마련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차례로 쫓아낸 위대한 민중이 언제까지 정치적 어림장이로 남을 수는 없다. 지역감정에서 해방된 참 여론을 대변할 정치, 민중과 더불어 깨끗한 희망을 보듬어갈 정치는 정녕 이 땅에서 꽃필 수 없는가. 뿔뿔이 갈라졌음에도, 덧셈을 할 섟에 쉼없이 뺄셈만 하는 이 땅의 민주·진보세력에 묻는다. 손석춘 여론매체부장[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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