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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시네요 그런 일을 하셧다니..3년 지나도 멀쩡하면 

오지도 않은 5월 세금타령? 부과가 되질 않았는데 어떻 

비가 옥상 식물에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5월에 세금 

맞아요.그래서 불효부모사후회란 주자십회훈이 있나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선물을 주니 얼마나 즐거웠나요?부모님 

전 어제 아버지 생각이나서 하루종일 울었어요. 아버지 

맞아요, 세번 바르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흰 만족했 

할수만 있다면 하면 좋죠 그런데 그 기술이 과연 그수준 

오늘 수고하셨네요. 배가본드님^^드디어 옥상방수공사를 

일기장에 빨리 오셔서 이런 댓글 달아주셔 감사해요.행복
응암동을 오랫만에 찾았다.
1979년에 결혼하기전에 와이프와 늘 만났던 곳이 응암동였다.
직장이 가까운곳에 위치해 있었던 이유였겠지..
이틀이 멀다고 우린 자주 만났었다.
데이트 장소에 조카 철웅이를 델고 나왔던 와이프.
_언니가 병원에 있어서....
결국은 응암동에서 만났었고 결혼까지 꼴인 할수 있었던 것은
와이프 집이 응암동였던 탓이었다.
-그런 정열, 그런 성의..
지금은 다 어디로 가고 만걸까..
그 곱고 곱던 와이프
부잣집 며느리 감이라고 애기했던 사촌들
지금 와이프는 그런 모습은 어디고 없다
병들고 지친 얼굴,
당뇨로 인해서 약이 아니면 견딜수 없는 그런 몸,
보기에 안타깝다.
헌데도 왜 그렇게 건강을 챙기지 않은지...........
-아니 당신이 앞으로 몇 십년을 살것 같애?
이젠 좀 쉬고 편히 살란 말야..
-.......
귀에 들어오지 않은듯 듣는둥 마는둥 한다.
이런 고집쟁일 왜 몰랏을까?
거의 100% 참석했던 친척들
요즘은 다 모이지도 않는다.
늙어서 일까?
수원의 대현인 질녀와 함께 왔다.
형님 대신으로.........
25평형이지만 오르기 전에 사서 상당히 올랐단다.
-아마도 1억 정도는 오른거 같아요.
-그래..그때 사길 잘 했다.
나도 아파트 살려다가 결국은 단독을 사고 말았다.
너무 올라 엄두를 못내겠더라...
다큰 딸을 연탄가스로 잃어 버리고 마음에 홧병이 들어
매일 술로 연명하다가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가신 광래형님.
그 연탄가스로 간신히 살아난 아들이 이젠 결혼해서 딸까지
낳았단다
지하에 계신 형님은 감회가 어떨까..
<너를 살리기 위해서 아빠는 어쩔수 없이 딸을 포기 했단다.
두명중에 한명을 포기 해야 했던 상황였으니.........
고압산소기가 한대 밖에 없어서.....>
딸 하나는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하나인 아들은 왠일인지 결혼도 못하고
있고 딸 하나는 호주에 건너간지 20 년이 넘었지만 아직껏 나오지 않고
있는 정금 누나..
-어떻게 딸이 그렇답니까?
부모가 보고 싶지도 않대요?
그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글쎄 말이다
자식도 길러놓으면 다 그렇게 되더라
다 필요없이...
어떻게 부모곁을 떠나 외국에서 20 여년간 한번 나오질 않은건가?
그게 어디 자식일까?
노년이 편치 않은 정금누가
그 속 마음을 누가 알아주겟느가?
이런 술자리엔 늘 빠지지 않던 성북동 매형
요즘은 잘 나오시질 않는다
것도 늙어가고 있단 증거리라..
은좌극장도, 민복이가 살던 영진 양복점도 그대로다
와이프와 선을 봤던 < 오시오 다방 >
그 건물은 그대론데 엉뚱한 점포가 들어섰다
이젠 100 번지 일대는 개 건축이 시작되고 있나 보다
곧 바로 시행할거 같던것이 무려 30 년이 걸렸다.
대현이가 집까지 바래다 줄때 까지 난 추억의 거리를 생각하면서
왔다.
그 머언 추억의 거리를........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거 같은 가까운 곳인데도 세월은 이미
그렇게 많이도 흘러갔다.
<한샘 양복점 >의 핸섬했던 고 재춘 씨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한번쯤 보고 싶다.
하두 오래동안 못본 얼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