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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긴 여정

참으로 긴 여정였다

너무도 힘들고 너무도 답답했던 여행

늘 불안의 그림자는 곁을 떠날줄 몰랐던 날들.

-뭐 공불 어떻게 하길래 3 년이래?

그 사람 머린 돌 대가리 아냐?

아무렴 60 점 못 맞을까, 어렵다해도.....??

 

첨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들을 할거야.

첨엔.......

 

30 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단 것이 실감으로

다가올때 내가 할일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퇴직후에도 남의 밑에서 눈치

받는 생활을 한단 건 죽기보담 싫었고...........

 

2004년 3 월,

봄 싸락눈이 청승스럽게 내리는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공부하러 갔던 우면산 기슭의 공무원 연수원.

-뭐 6 개월 무료 교육시켜 준다니까 그정도 공부하면

될거야

다들 그랬었다.

공직생활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관문에 들어와

근무했는데..........

그 사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퇴락한 머린 송두리채

잊어 버린채...

물론 그 사이에 승진공부를 한답시고 안한건 아니지만..

그 기간이란게 고작 몇 개월 정도였지.

과목도 겨우 2과목정도였고......

그리고 그 시험 범위란게 딱 정해진 범위라서 몇번 하면 무난히

합격했던 자만심이 그렇게 가볍게 본건 아닌지...??

 

1주일에 3 번, 것도 밤에만 3 시간 정도의 공부,

6개월 다녔었다.

수박 겉 핥기 식의 공부.

가는데 2 시간 오는데 2 시간이 소요된단 것은 너무도 공부할 시간을

뺏았았다.

-차라리 공짜 바리지 말고 정식 학원에 등록해서 차분히 기초를

다졌었다면 과연 그렇게 긴 시간을 허비했을까?

-그 먼데 다니지 말고 가까운곳으로 와요

하던 이 선호.

-18 여만원이나 들인 책은 어쩌고??

그랬었다.

그 책을 버리고 새롭게 산단것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게 뭔데?

과감히 새롭게 출발했어야 했는데...

그때 결단을 내리지 못한게 두고 두고 후회였다.

 

그 악명 높았던 15 회 시험.

처음 받아본 시험지

내가 넘기엔 너무도 높아 보였다.

그 깡마른 민법 강사.

-대학에서 4년간 하는 민법을 단 몇 개월에 마스터

하려고 하다니?

이건 택도 없어요.

사실였다.

전념한것도 아니고 대충훑어보고 임한 시험.

이건 언어도단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평균 40점

물론 민법같은건 과락 점수.

하필이면 그 시험이 역사적으로 가장 어려운 15 회.

시련은 너무컸다.

그리고 응시생들의 농성과  기물파괴....혼란.

-한번 출제자들이 풀어봐라 과연 40 문제를 40 분에 풀수있는지...?

긴 지문을 읽고 답을 고른단 것이 불가능했다

1분이면 읽기도 바뿐 시간

그렇게도 한결같이 지문들이 긴 지문들 뿐...

암튼 농성결과 얻은건 재 시험이란거..

너무도 엉터리로 낸 문제란게 증명되었었지.

-5월 22 일 15 회 추가 시험 실시

너무도 흥분에 벅찬게 아니었다.

<화곡박문각 개강>

2004 년 12 월 1일에 있었다.

무조건 등록했다

야심만만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다

공무원 교육원서 받던 교육과는 천지차이였다

작년에 이런데 등록하지 못한게 그렇게 후회될수

가 없었다.

5월 22 일까지의 6 개월.

-이번엔 기어코 입성하리라...

허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서의 6 고목을 모두

마스터 한단 건 무리였던가 보다.

그 쉬운 15회 추가에서도 어이없이 낙마.

-달달 외우지 않음 답을 찾을수 없다.

10월에 있는 16 회 시험

거긴 꼭 합격하리라

그리고 집에서 공불했다.

나름대로 기본서로 쉬지않고 열심히 매달렸다.

다시 학원 등록 2 달 문제 풀이.

마무리하곤 당당히 대든 16회 시험.

 

문제지에 답을 다 찾아놓고 15 개 정도를 답안지에 옮기지도 못하고

제출하고 만 그 통한의 16 회.

그 인정머리 없던 깡마른 여 교사.

단 3분만 정답지에 옮길수 있도록 배려만 했더라면 그때

당당히 합격했었다

왜 냐면 나중에 맞춰 보니 딱 합격권였다.

죽이고 싶을정도로 미웠었다.

-당신들은 우리가 여기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고생을 한줄 모르나요?

이번 실패하면 또 다시 피 말리는 1 년을 공부해야 해요

그 기약없는 공부.

헌데 그 정도를 못 봐주다니 참...........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니.....

그 길로 장수하세요...악담였다.

-아빠 한번 사정해보지 그랬어.

어떻든 붙들고...

나중에 애기듣던 영란이의 말

후회였다

그때 무릎이라도 꿇고 사정해 볼걸....

 

그리고 2007 년의 17 회.

노량진으로 진출해서 눈코뜨지 않고 학원에서 지냈었다

아침 7 시에서 밤 10 시까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부.

사투였다.

그리고 시험 바로 전날.

체력이 바닥이 난건지 아님 스트레스에 시달린건지

감기 몸살로 병원행.

주사맞고 약을 먹으니 머리가 몽롱해서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악몽의 그림자를 떠오르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지금 병원가면 어떡해요?

진즉 갖다왔아야지 바로 낼이 시험인데...?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하던 혜자씨.....

 

이윽고 시험 당일.

머리는 욱씬거렸지만 감기약은 먹지 않고 갔었다

하늘도 완전잿빛.

기분은 영 말이 아니었다.

불안과 불길한 그림자가 자꾸 엄슴해 오는걸 느낄수

있었다.

<아냐,이 정도의 감기갖고 행여 떨어질려고??>

1차는 무난히 풀었다.

허나 2 차에 임하자 이건 지문들이 생소하기만했다

들어보지도 못한 지문들과 어려운 등기법.

머린 빙빙돌고 으시시 우한도 들고....

<이거 틀렸구나..

어쩌나....?>

그 뒤론 공법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서 시험이 끝나기만

기다려졌다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도.

모든게 귀찮았다.

나중에 보니 1 차는 겨우 합격권였는데 2 차는 어림도 없었다.

합격권에 한참 먼 8 개나 모자랐다.

여기 저기의 전화들.

차라리 꺼 버렸다.

도저히 집에 있을수 없었다.

오랜만에 t 를 불러내 소주한잔했다.

그 와의 시간을 갖지 않음 미칠거 같았다

j 는 뭐가 틀어졌는지 통화 안한지 오래고....

 

 

다시 4수 도전.

재수도 아니도 3 수도 아닌 4수라니?

내가 이렇게 돌대가린줄 몰랐다.

중학교 시험에 180 명중에서 4등으로 합격한게

그렇게도 자부심을 심어줬는지 모른다.

그게 언제적인 애긴데..???

허나 이번엔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그 힘든 1차를 떨쳐버리고 2차만한단것이 한결 수월했고

나름대로 여유도 있었다.

하눈 팔지 않고 매달렸다.

-되든 안되든 올해로 끝낼거야

더 이상 못하겠어.

이래도 안되면 운명이라 생각해야지 어쩌겠어?

이러다 명대로 살지 못할거 같은데.........

-......

듣고만 있던 와이프.

 

시험 1 주일 전.

슬슬 작년의 그런 증세가 오고 있었다.

올해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단단히 준비했다

추석 끝나고 인삼 보약도 복용했고...

미리 감기에 대응했다.

미리 대응한게 잘한거 같았다

작년처럼 참다 참다 못해 병원가면 이미 늦거든....

 

철저히 시간 안배.

한 과목당 50 분.

그 중에서 45 분안에 풀고 5 분은 남겨두기로했다

답안지 옮기는데 5 분은 소요된단 생각으로..

3 과목이면 15 분이면 충분하단 것을 모의고사시에

충분히 테스트했었지.

모의고사란거 참으로 소중한 체험이다

그런 과정에서 시간안배등을 해 본단것..

철저히 준비했다

화장실에 갈가봐 김밥한줄 딱 먹고 물은 먹지도

않고 버틴단 것이 힘들었지만 견뎠다.

2시간 30 분 동안을 긴장속에서 견딜려면 화장실에  가고픈

마음을 미리 차단시켜야 한다.

한끼 정도 굶은들 어떠랴..

그래서 배는 고팠지만 참았다.

11시 30 분에서 2 시에 끝나는 시험.

맨 앞줄였다.

그건 문제가 아니지만 중학교 교실이라사 너무도 책상이 낮아 힘들었다.

철저히 45 분에 푼 문제

그리고 20여분 남기고 천천히 정답을 옮겼다.

하나 하나.........

생각보담 쉬워 보였고 자신감도 들어 천천히 풀었다.

 

목동의 경숙씨와 영길씨.

노량진 학원다닌 사람은 이렇게 딱 3 명.

우린 끝나고 식당으로 향했다.

배가 고팠지만 정답  맞춰 본단것이 너무도 흥분되어

보였다.

-제가 점심 쏠게요

경숙씨가 그런다

홈 에버의 구내 식당

뷔페.

식사를 하곤 답을 맞췄다.

가장 기댈 건 중개법이 겨우 28개..

-아니 32 개는 나와야 80점인데 어거 어째?

-아니 뭐 공법에 자신있는데 뭐 그래요?

다들 30 개가 넘은 중개법.

헌데 가장 힘들게 치른 공시법에서 33 개,

그리고 공법에서 29개..

72개면 합격인데 90 개다.

무려 18 개를 넘긴거다.

-야~~!!!!!

모두 합격권였다,

물론 목동의 경숙씨가 가장 낮은 점수대지만 그래도 합격권은

되었으니 셋은 모두 식당에 떠나가게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4년만에 맞본 오랜만의 환희.

별거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하던 것을 성취했들때의 그 뿌듯함

그건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리고 학원에 다님서 공부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비애를 모른다

그 고통이란게 얼마나 큰지....

 

-아빠, 낼이 시험인데 컨디션어때?

-괜찮아...

걱정마...

-아빠 너무 긴장하지 말고 차분히 해

내가 여기서 기도해 줄께..

-그래 그래..

네 기도 때문에도 될거야 고맙다

그리고 사랑해...

-아빠 화이팅~~!!!

전날 영란이의 격려 전화

너무도 반가웠다.

 

긴 여정을 접고 이젠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해야 겠다.

그래도 결코 굽히지 않고 여기까지 와서 이루고 만 것에 작은 위안을

느끼고 나만의 희열을 느낀다면 남들이 웃을까?

하긴 내 이 마음을 남들이 어떻게 알기나 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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