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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래니
비밀이지 않은 비밀들의 행렬
말괄량이 길들이기


영화는 '혼자'이거나 '혼자이고 싶을때' 보고, 연극은 '함께'이고 싶을때 본다.


 


 


 


문화생활을 한지 오래라 사전정보없이 그저 지인을 따라 나선 것 뿐이었다.


시간보다 늦은 입장에, 처음 시작부분도 놓쳐버려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오랜만에 '연극'을 본다는 것 자체만 의미로 두었을뿐.



장면은 배우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를 즐기는 일행과, 그들의 담소에 끼어 드는 주인,


그리고 옆에서 홀로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한 사람.


 


이야기의 시작은 그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데서 시작된다(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무리는 그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보자며 역할분담을 하고 극을 시작한다(하지만, 난 이름에 약하다..ㅠㅠ)


 


연극을 보았던 사람들은 내용을 알테니 각설하고(물론 난 연극을 이날 처음봤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무슨 내용인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야 기억났다.-0-).


 


극중에게 지인에게 느끼남이라 언질받았던 캐릭터 패트로치오는 처음에는 비호감이었다. 아무리 캐더린이 괴팍하고 말괄량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한 억압적인 행동은 불쾌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비앙카 역시 내 동생이라면 대신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아마 내가 공연때 그 '오빠'가 되었다면 '콧수염 괴물아, 꺼져버려!'대신 '다리털 못난이, 비켜' 이랬을지도).


어쨌든 두 남녀는 내 감정이입과는 상관없이 결혼을 했고(중간에 배우를 꾸미는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 번잡하기도 했지만, 그들을 꾸며줄 만큼 난 축하하는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_-), 결혼후 패트로치오가 하인들을 괴팍하게 부려먹어 캐서린이 주늑들게 만드는 것 또한 마음에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행동이나 말의 바닥에는 그녀를 향한 '걱정'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었고,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 패트로치오캐서린의 성격을 고치기 위한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나는 혼자서만 웃음이 '뻥'하고 터져서 멈추지 못했는데, 웃다가 눈물까지 나기는 오랜만이었다.)


그 후로는 모든 장면에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봤는데, 그것은 감정이입이 심한편인 내 성격이 한몫 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배우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공연이기에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관객의 반응과, 여기에 더해지는 배우의 애드립. 그것이 좁지만열기가 가득한 소극장 공연의 매력이 아닐까?


결국 이야기는 극중에서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리고 다시 '술집'으로 변한 무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겼다.
그 속에 홀로 앉아있는 사람에게 눈이 갔다.


아마 모르면 그저 있는지도 모르고 시선을 주지 않을 사람이었겠지만, 노숙자같은 그의 과거에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걸, 그래서 현재의 상황이 더욱 견디기 힘들고 비참할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순간만큼은 알지도 못하면서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치부하고 비아냥 거리는 일행에게 화가 났다.


너희는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자신에 대해 당당하고 만족하기에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비하하느냐. 너희가 지금 그 모습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냐. 만약 너희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너희가 추억할 지금의 시간이 외롭게 취해있는 저 사람보다 행복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느냐.


마음속에 엉켜버린 울분이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 했다. 그때 내 심정을 대변하듯 '10년후에 너희가 저 사람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있나'라는 말이 나왔고, 속이 후련했다.


그는 물었다. 10년후에 어떤 모습이겠냐고.
속으로 대답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거라고. 예전에도 원했고, 그래서 조금은 이루었으니, 노력하는 지금이 그 꿈에 조금은 더 다가가 있을거라고. 나는 그러기 위해 사는거라고. 연극을 하고 있는 당신들도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하고 있는거 아니냐고. 나중의 미래의 모습이 불투명하다고 미리 포기하고 억지로 다른 길을 찾는대신, 열정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임하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니냐고.


노래소리 사이에 조용히 퇴장하는 그의 모습이 쓸쓸했다. 그 노래가 이렇게까지 슬프고 안타깝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만약 그가 행복했던 순간을 지키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하고, 그 끈을 놓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설수는 없어도, 적어도 자기자신을 비하하는 비참함을 느끼는 것이 덜하지 않았을까.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그. 같은 노래의 다른 느낌.
아련하고도 슬프지만 그리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로는 표현 못할 감정이 복받쳤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아마 눈물이 흘러내리지만 않았던듯).


원래 공연이 끝나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지인이 간식을 전해주러 나간 동안 자리에 잠깐 앉아 여운을 즐겼다. 사진을 찍겠냐는 말에 아니라고, 나가자고 말하려는데 바로 앞에 서 있는 '패트로치오'가 보였다.
'나 저 사람이랑 찍고 싶어.'
처음으로 배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배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기에 어색한 손이 민망해 등뒤로 뻗었는데 흠뻑 젖은 배우의 옷이 잡혔다. 땀에 젖은 옷은 평소라면 찝찝함으로 느껴졌겠지만,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이만큼 열정적이구나. 이토록 최선을 다하는구나.
배우의 정열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왠지 나도모르게 뿌듯해졌다.


이 사람들도 내가 겪는 많은 것들을 겪고 감수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연극배우라 하면 '우와, 대단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겠어요.'라고 치켜세워주는 모습도 보이겠지만, 뒤에 가서 현실감이 떨어진다며, 먹고 살기 힘들겠다며, 자기 자신밖에 생각 안한다며 욕을 먹기도 할 것이다. 철없다고 가장 많이 들을지도.


그래도 이들에게는 함께 하는 동료가 있어 더욱 힘이 되고 의지하며 버틸 수 있는게 아닐까.
차라리 열정적인 무언가를 원한다면, 나도 이 속에 속할 수 있었고, 그랬다면 만족하고 행복했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연극'이라는 것이 아무나 적당히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끼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나름대로 나 자신을 표출할 무언가를 찾은거고, 내 방식대로 노력할 뿐이다. 가끔은 외롭고 힘들지만 어차피 자기자신의 만족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여운이 많이 남고, 아쉬움이 많은 공연이었다.
그래서 다시 볼 생각이다.


처음 시작 부분을 못봐서, 함께 참여하지 못해서, 하나의 캐릭터에만 올인해서 아쉽다.
내용에 대해, 연기에 대해, 캐릭터에 대해, 배우에 대해 여러면으로 보고 다른 무언가를 더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다.


 


 


 



사족으로 붙이자면 처음 내가 올인한 캐릭터캐서린이었는데, 패트로치오로 옮겨갔다(주방장이 '제가 안그랬는데요.'할때부터인가?).
감정이입이 잘 되었기에 캐서린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은 잠깐 했으나, 역시 여장을 풀고 나니 낯설어져서 다가가지도 못하겠더라는....


다음에 가서 공연을 보면 그날 집중해서 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와 사진을 찍어야겠다. 공연 한번에 한명씩만..ㅎㅎ

유키
2010-04-12 07:51:29

어머~사진속의 여자분은 본인이세요~~? 무척이나~아름다우십니다~~배우인줄 알았다는~~^^*
머래니
2010-04-12 20:46:56

본인 맞아요. 그리고 전에 10년만에 사촌동생이랑 연극봤다고 일기쓰신분이 올린 사진에 나온 페인도 저구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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