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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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3
조회 : 1,122
댓글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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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츈
2011-12-23 14: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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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중에도 그런 쪽에 흥미가 있는 친구가 있었어요. 물론 남자구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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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2011-12-24 00: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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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나, 정말요? 글쿠나...남자분들도 읽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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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
2011-12-25 00: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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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혐오스러워요 ㅡ.ㅡ; 그렇다고 게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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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2011-12-25 23: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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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그럴수있지요
시험이 내일 모레인데 잠깐 졸음을 내몰고 공부에 다시 집중을 하기 위해 소설 사이트를 열었다.
bl이라는 쟝르가 있다는 걸 안 후로 그 생소함과 신기함에 잘 읽지 않다가 오랜만에 눈에 띄는 제목의 소설을 무심코 클릭했다.
작가 프로필에 얼핏 초록색 연필 표시가 되어 있는 걸 보고 '어느 정도 필력이 있나보다'라고 기대했던 게 사실이었다.
아아,실수했다. 결국 새벽 1시까지 글에 빠져들어 완결을 보고야 말았다.
할 일은 아무것도 못한채로...
좋은 글, 재미있는 글이란 이런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화도 두세시간이면 끝나건만 나는 앉은 자리에서 저녁도 먹지않고 오후 3시부터 새벽 1시까지 목을 빼며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ㅠㅠ
bl이 뭔고 하니, boy's love의 약어, 일명 게이물이란거다.
여자끼리의 사랑은 뭐라더라, 백합물이라던가?
아직은 대중적이지않은 이런 '물'들의 문화는 가끔 나를 당혹하게 한다.
비엘소설을, 비엘 애니를 처음 볼 때도 그랬다.
머릿속에 막연히 상상해오던 '과연 남자들끼리 정사가 가능한가'의 의문은 소설을 보며 자연스레 풀렸다.
마치 야동을 처음 봤을때처럼 나는 낯을 붉히며 마음속으로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하면서 아,그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한 다리 건너 게이 친구는 근처에 두어 본 적 있지만 실제로 게이 커플은 보지 못했으니
소설 속의 씬들이 반드시 사실이다 아니다, 과장된 거다 아니다의
여부는 모르겠다.
소설 속에는 보통은 소위 말하는 '정사 씬'들이 몇 개 씩은 들어가 있다.
하드 코어 한 것에서부터 가벼운 것까지.
그런 것들이 '역겹다'고 느껴진다면 아직도 편견을 가지고 있는것일까.
예전에 '순정 로맨티카'라는 일본 애니를 본 게 떠올랐다.
저질스런 씬들이 난무하는 비엘 물에 데여 역시 이런 류의 한계란
어쩔수 없는 것이다란 생각을 했을때쯤 봤는데 그걸 보고 조금
견해가 바뀌었다.
'남자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남자였을 뿐이다'란 절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사랑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도 사랑의 본질은 같다.
끝없이 아껴주고 보듬어 주고 싶은 것, 상대에게도 똑같이 사랑받고 싶은 것.
그들은 이성을 사랑하듯 똑같이 두근 거리고, 안절부절하고, 거절 당할 까 두려워하고, 기쁨에 들뜨고, 슬픔에 방황한다.
조금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머릿 속 어딘가 삐끗 어긋난 건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몸은 여자인데 성 정체성은 남자, 혹은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주류가 아닌 소수자인 그들은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꺼려지고 있다.
무명의 이준기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왕의 남자'란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칠 때 그나마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문화도 나쁘지 않다.
변태, 저질 문화라고 치부하기 전에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일환이다.
2011년 현재, 나는 어느새 왠만한 로맨스 소설의 남녀 주인공 뺨치게 밀당(밀고 당기기)을 잘하는 비엘 소설 속의 남자들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있다.
공식이 정해져 있는 로맨스 소설을 죽어라 싫어하는 이 내가 비엘 로맨스는 읽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꽤 많은 여류 작가들이 비엘 소설을 쓰고 있고 꽤 많은 여자 독자들이 그걸 즐기고 있다고 알고 있다.(정작 남자 독자나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다.속으론 웨엑~하고 있어도 그쪽 문화시장의 성장성이 기대된다면 쓸지도 모르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비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대부분 필력이 좋다.
그 좋은 필력으로 비엘을 쓰지 말고 보다 대중적인 소설을 써보시지요, 완전 대박날 겁니다.라고 어줍잖은 충고라도 해 주고 싶을 정도로.
나더러 그런 걸 쓰라면 나는 절대 못쓴다.
하긴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 흔해 빠지고 진부한 로맨스 소설조차 못 쓰는데
비엘은 어찌 쓰리.
밀당의 과정을 실감나고 달달하게 표현할 수 있길 하나, 에로틱한
정사씬을 그럴듯하게 풀어낼 수 있길 하나.
하루 공부를 망치게 했지만 소설을 본 걸 후회하진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잡고 깊은 키스를 나누며 '너는 내 운명, 내 아름다운 사람'
이라는 토 쏠리는 대사를 태연하게 해대는 인물들의 이미지와 함께
서정적이고 속이 근질근질해 졌던 소설 속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괴테의 파우스트의 인용이었던가.
<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참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