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글솜씨가 없는 걸 알고 있는 터라 더 노력하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짜증 날 때가 가끔 있다.
인풋이 많아야 아웃풋도 많다는 말은 진리일까 아닐까.
얼핏 보았을 때 글쓰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천부적인 재능이란 '딱히 다른 사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웬만한 수준에 올라있다' 라는 게 내 사전식 해석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진솔함이 드러나고 자신 및 타인의 깊은 감정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한 글을 좋아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런 감상적 표현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오히려 객관적이고 관찰적, 사실적인만큼 건조하고 뻣뻣하다는 게 내 글의 특징이다.
피상적이고 겉도는 표현보다 폐부를 건드리는 문장을 쓰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 요즘 생각중인데 꽤 그럴듯한 대안을 하나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시를 읽는 것이다.
아주 어릴때는 동화책 매니아였다. 그림이 있건 없건 파고들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흥미진진함, 결말을 보고 났을때의 카타르시스가 좋았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색채는 전혀 없고 시사 만화 수준의 조잡한 그림의 못생긴 '신데렐라'에도 나는 눈물을 흘렸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콩쥐의 꽃신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청소년기에는 손에 잡히는대로 읽었던 거 같다.
집에서 남자형제들이 숨겨놓은 야한 잡지부터 만화, 무협지, 추리소설,성경,신문,심지어는 이름도 생소한 회사의 사보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읽었던 건 홈즈와 루팡 시리즈와 소위 말하는 고전이었다.
한국 근대 소설부터 외국 문학까지 이때 읽은 고전들이 실생활에도 꽤 도움이 되긴 했지만 물론 스스로 만족할만큼 많이 읽지는 못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자기 계발 도서를 열심히 찾아서 봤고 그 이후에는 에세이를 주로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제까지 통틀어 시는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내게 시는 상당히 난해하고 동시에 우스워 보였다.
그건 자만이라기 보다 무식이었다.
시어가 주는 아름다움보다 '결국은 개인의 넋두리를 참 어려운 말로 장식을 해 놓은, 겉치레만 잔뜩인, 이해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옹알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어야말로 언어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면에서 번역을 거친 외국시보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가 더 좋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체를 한 번 거쳐서인지 그 나라 고유의 말의 느낌을 다른 말로 번역한 시는 조금 어색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는데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는 말이 주는 느낌이라든가 운율이라든가 담고 있는 뜻 같은 게 액면상 받아들이는 그 이상의 무엇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시가 대단한 이유는 소설이 긴긴 문장들을 거쳐 이야기들을 주욱 풀어놓는 데 반해 시는 단 몇 줄로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말하는 대신 요점을 집어 정확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렇다고 소설보다 시가 쓰기가 쉽다거나 그 반대라거나의 뜻은 아니다.
아무튼 '시'라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건 유안진 시인의 시나 이해인 수녀의 시, 천상병 시인과 도종환 시인,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의' 안도현 시인과 '청춘'의 사무엘 울만의 덕이다.
인생의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 자기 성찰을 하게 해 주며, 소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끼게 해 준다.
참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데 큰 공헌을 한다고나 할까. ㅎㅎ
죽기 전에 꿈 하나 생겨서 좋다고 요즘 생각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고 싶다.'
어떤 이에게는 시시껄렁한, 나는 그 따위 꿈 벌써 이루다 못해 베스트셀러 작가다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흔해 빠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기가 꺾이기도 한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마치 나 같은 건 글을 쓸 자격조차도 없는 듯 느껴지기 때문에.
하지만 언제 꿈이 이루어질진 모르겠지만 기간은 평생으로 꽤 길게 두고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벌써 흐흐흐....하는 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제 겨우 마음먹고 글을 제대로 쓴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고 글을 쓰는 기간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평생 보장되어 있으니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글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생각나는 틈틈이 쓰고 있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원래 글솜씨가 없는 걸 알고 있는 터라 더 노력하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짜증 날 때가 가끔 있다.
인풋이 많아야 아웃풋도 많다는 말은 진리일까 아닐까.
얼핏 보았을 때 글쓰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천부적인 재능이란 '딱히 다른 사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웬만한 수준에 올라있다' 라는 게 내 사전식 해석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진솔함이 드러나고 자신 및 타인의 깊은 감정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한 글을 좋아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런 감상적 표현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오히려 객관적이고 관찰적, 사실적인만큼 건조하고 뻣뻣하다는 게 내 글의 특징이다.
피상적이고 겉도는 표현보다 폐부를 건드리는 문장을 쓰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 요즘 생각중인데 꽤 그럴듯한 대안을 하나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시를 읽는 것이다.
아주 어릴때는 동화책 매니아였다. 그림이 있건 없건 파고들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흥미진진함, 결말을 보고 났을때의 카타르시스가 좋았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색채는 전혀 없고 시사 만화 수준의 조잡한 그림의 못생긴 '신데렐라'에도 나는 눈물을 흘렸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콩쥐의 꽃신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청소년기에는 손에 잡히는대로 읽었던 거 같다.
집에서 남자형제들이 숨겨놓은 야한 잡지부터 만화, 무협지, 추리소설,성경,신문,심지어는 이름도 생소한 회사의 사보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읽었던 건 홈즈와 루팡 시리즈와 소위 말하는 고전이었다.
한국 근대 소설부터 외국 문학까지 이때 읽은 고전들이 실생활에도 꽤 도움이 되긴 했지만 물론 스스로 만족할만큼 많이 읽지는 못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자기 계발 도서를 열심히 찾아서 봤고 그 이후에는 에세이를 주로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제까지 통틀어 시는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내게 시는 상당히 난해하고 동시에 우스워 보였다.
그건 자만이라기 보다 무식이었다.
시어가 주는 아름다움보다 '결국은 개인의 넋두리를 참 어려운 말로 장식을 해 놓은, 겉치레만 잔뜩인, 이해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옹알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어야말로 언어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면에서 번역을 거친 외국시보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가 더 좋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체를 한 번 거쳐서인지 그 나라 고유의 말의 느낌을 다른 말로 번역한 시는 조금 어색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는데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는 말이 주는 느낌이라든가 운율이라든가 담고 있는 뜻 같은 게 액면상 받아들이는 그 이상의 무엇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시가 대단한 이유는 소설이 긴긴 문장들을 거쳐 이야기들을 주욱 풀어놓는 데 반해 시는 단 몇 줄로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말하는 대신 요점을 집어 정확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렇다고 소설보다 시가 쓰기가 쉽다거나 그 반대라거나의 뜻은 아니다.
아무튼 '시'라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건 유안진 시인의 시나 이해인 수녀의 시, 천상병 시인과 도종환 시인,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의' 안도현 시인과 '청춘'의 사무엘 울만의 덕이다.
인생의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 자기 성찰을 하게 해 주며, 소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끼게 해 준다.
참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데 큰 공헌을 한다고나 할까. ㅎㅎ
죽기 전에 꿈 하나 생겨서 좋다고 요즘 생각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고 싶다.'
어떤 이에게는 시시껄렁한, 나는 그 따위 꿈 벌써 이루다 못해 베스트셀러 작가다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흔해 빠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기가 꺾이기도 한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마치 나 같은 건 글을 쓸 자격조차도 없는 듯 느껴지기 때문에.
하지만 언제 꿈이 이루어질진 모르겠지만 기간은 평생으로 꽤 길게 두고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벌써 흐흐흐....하는 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제 겨우 마음먹고 글을 제대로 쓴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고 글을 쓰는 기간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평생 보장되어 있으니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몇달 전 읽은 어느 외국 작가가 쓴 작법 책 중 이런 구절이 있엇지.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오로지 쓰고 또 써라.
영감이 떠올라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쓰다보면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내일은 도서관에 가서 시집을 고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하면 베껴 놨다가 암송을 하는 것도 좋겠지.
아예 시 암송을 이번 해 상반기 목표로 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