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에서 알게 된 한 녀석이 있다.
나이가 동갑이라 서로 쿨하게 친구로 지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독신남이고 나는 남편이 있는지라 자주 만나는 건 내 쪽에서 꺼렸다.
어쩌다 한 번 만나 같이 놀 때는 자주보는 동생과 늘 함께였으니 별다른 맘이 서로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만나면 같이 밥 먹고 떠들고 영화보고 게임하고 구경가고 그게 다인 사이다.
한달 전 이녀석 생일날 같이 보는 동생과 돈을 모아 가방을 하나 사 놓았는데 서로 만날 시간이 없어 동생에게 그 녀석 생일 선물을 너희 둘이 따로 만나 네가 전해주는게 좋겠다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선물을 전해줬겠거니 생각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으니 나한테 징징댄다.
"언니, 정말 그 오빠 너무하는 거 아냐?"
"왜?"
"그날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세상에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안나오는 거 있지?"
"뭐, 바람맞았다고?"
"응응, 아무리 전활 해도 안받고 문자도 씹고.....나 이런 적 첨이야. 그날 우산도 안갖고 나갔는데 비도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려서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
선물용 가방이 젖을까봐 꼭 껴안고 있었단 말야.... 나 이제 그 오빠 문자도 씹고 전화도 안받을거야!"
듣고보니 기가 막혔다.
"그 후로 연락없어?"
"연락이 있으면 내가 아직도 이렇게 꽁해 있겠어?"
내 물음에 동생은 더 길길이 뛴다.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누구한테건 정말 싫은 일이지만 그 녀석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위로하며 일단은 징징대는 동생을 달래놓긴 했다.
며칠후에 우리 셋은 얼굴을 보고 그간의 사정얘기를 하고 선물 가방을 전해주었다.
녀석은 삐져 있는 동생을 볼 면목이 없는지 계속 나에게 중재해 줄 것을 눈짓으로 재촉했다.
"일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이 안났어."
"전화를 못 받았다면 문자 확인했을 때 전화주지 그랬어. 저 친구는 많이 기다렸을거 아냐."
하지만 절대 그 녀석은 미안하다는 말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삐쳐서 등을 돌린 동생과 이 녀석 가운데에 자리잡고 차근차근 설명해 준 건 나였다.
원래 활달한 성격인 동생은 어영부영 어떻게 화해를 해 주었고 그 녀석이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란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
며칠전 일요일 오후, 오늘이 쉬는 날이라기에 그럼 모처럼 게임 한판 같이 할까라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래, 별 일 없으면 갈게."
"응, 오게되면 문자나 전화해."
결국 다음날이 되어도 녀석의 폰에 수없이 찍혔을 내 문자나 전화는 무시된 채 녀석에겐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에 대한 언급은 없는 채 일상적 카톡 문자가 왔길래 대체 왜 전화를 안받는거냐고 했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랬단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쉬는 날 겜 한 판 하자는 약속이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기는 것보다 중요한 약속일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 것인지 아직도 판명 조차 안되는 '무수한 문자와 전화 무시하기'는 도대체 이 녀석은 우릴 뭘로 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건 단순한 남여의 생각차이인가?
아니, 남여를 떠나 약속을 펑크낸 건 엄청난 실례이지 않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당연한 거 아닌가.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예의를 이 녀석은 대체 그 나이먹도록 익히지 못했던 걸까.
어째서 상대방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혹은 걱정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이 녀석에겐 없다는 말인가.
내가 나이를 먹어 너무 고지식해진 걸까 생각해보았다.
옹고집처럼 마음을 닫고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걸까 하고도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그런데 답이 없다.
나이만 먹은 어린애들을 찬찬히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건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다.
그럴 권리도 없고 그러기엔 늦은 감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지식과 지혜는 스스로가 갈고 닦고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남을 꾸짖기 전에 나한테 뭐가 묻은 건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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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에서 알게 된 한 녀석이 있다.
나이가 동갑이라 서로 쿨하게 친구로 지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독신남이고 나는 남편이 있는지라 자주 만나는 건 내 쪽에서 꺼렸다.
어쩌다 한 번 만나 같이 놀 때는 자주보는 동생과 늘 함께였으니 별다른 맘이 서로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만나면 같이 밥 먹고 떠들고 영화보고 게임하고 구경가고 그게 다인 사이다.
한달 전 이녀석 생일날 같이 보는 동생과 돈을 모아 가방을 하나 사 놓았는데 서로 만날 시간이 없어 동생에게 그 녀석 생일 선물을 너희 둘이 따로 만나 네가 전해주는게 좋겠다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선물을 전해줬겠거니 생각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으니 나한테 징징댄다.
"언니, 정말 그 오빠 너무하는 거 아냐?"
"왜?"
"그날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세상에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안나오는 거 있지?"
"뭐, 바람맞았다고?"
"응응, 아무리 전활 해도 안받고 문자도 씹고.....나 이런 적 첨이야. 그날 우산도 안갖고 나갔는데 비도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려서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
선물용 가방이 젖을까봐 꼭 껴안고 있었단 말야.... 나 이제 그 오빠 문자도 씹고 전화도 안받을거야!"
듣고보니 기가 막혔다.
"그 후로 연락없어?"
"연락이 있으면 내가 아직도 이렇게 꽁해 있겠어?"
내 물음에 동생은 더 길길이 뛴다.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누구한테건 정말 싫은 일이지만 그 녀석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위로하며 일단은 징징대는 동생을 달래놓긴 했다.
며칠후에 우리 셋은 얼굴을 보고 그간의 사정얘기를 하고 선물 가방을 전해주었다.
녀석은 삐져 있는 동생을 볼 면목이 없는지 계속 나에게 중재해 줄 것을 눈짓으로 재촉했다.
"일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이 안났어."
"전화를 못 받았다면 문자 확인했을 때 전화주지 그랬어. 저 친구는 많이 기다렸을거 아냐."
하지만 절대 그 녀석은 미안하다는 말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삐쳐서 등을 돌린 동생과 이 녀석 가운데에 자리잡고 차근차근 설명해 준 건 나였다.
원래 활달한 성격인 동생은 어영부영 어떻게 화해를 해 주었고 그 녀석이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란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
며칠전 일요일 오후, 오늘이 쉬는 날이라기에 그럼 모처럼 게임 한판 같이 할까라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래, 별 일 없으면 갈게."
"응, 오게되면 문자나 전화해."
결국 다음날이 되어도 녀석의 폰에 수없이 찍혔을 내 문자나 전화는 무시된 채 녀석에겐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에 대한 언급은 없는 채 일상적 카톡 문자가 왔길래 대체 왜 전화를 안받는거냐고 했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랬단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쉬는 날 겜 한 판 하자는 약속이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기는 것보다 중요한 약속일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 것인지 아직도 판명 조차 안되는 '무수한 문자와 전화 무시하기'는 도대체 이 녀석은 우릴 뭘로 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건 단순한 남여의 생각차이인가?
아니, 남여를 떠나 약속을 펑크낸 건 엄청난 실례이지 않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당연한 거 아닌가.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예의를 이 녀석은 대체 그 나이먹도록 익히지 못했던 걸까.
어째서 상대방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혹은 걱정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이 녀석에겐 없다는 말인가.
내가 나이를 먹어 너무 고지식해진 걸까 생각해보았다.
옹고집처럼 마음을 닫고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걸까 하고도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그런데 답이 없다.
나이만 먹은 어린애들을 찬찬히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건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다.
그럴 권리도 없고 그러기엔 늦은 감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지식과 지혜는 스스로가 갈고 닦고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남을 꾸짖기 전에 나한테 뭐가 묻은 건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