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떨어지는 소릴 듣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 같다.

약간 떨리는 몸을 온기로 녹이며 아련하게 향수에 젖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들이 학기 중 떠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조금 우울했었다.

정을 붙이고 마음을 맞춰서 지내온 지난 일년이 무척 행복했었다는 감상과 함께.

욕심 같으면야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떠나는 길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었다.

서로에게 (적어도 나는) 지지대가 되어주며 밀고 끌고 보살펴 온 조직도 보스 한 사람의 언행으로 와해가 될 수도 있다.

여긴 아주 작은 조직체라 옆에서 기침을 해도 내 몸까지 들썩거리는 격이다.

을로서의 입장에서 보면 동료들을 내쫓는 보스가 야속했지만 보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보스의 과거가 얼마나 험난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배경이야 어찌되었건 맨바닥에서부터 작은 사업을 지금의 큰 사업으로 일구어 내기까지 수많은 고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사로운 것에는 얽매이지 않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판단만 내리려 노력했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한달 간 정리한 서류를 검토하고 전화로 보고 받는 것으로 조직의 모든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볼 수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보스가 다른 선생님들한테 한 이야기가 틀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보스가 그리고 있을 청사진을 수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비젼을 공유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아랫사람이 자기 기대치에 모자란다면 가르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했다.

그런 과정 없이 몇 개월이 지난 후 보스는 냉정한 평가자가 되어 거침없이 마음의 상처를 아랫사람에게 주ㅇ었다.

보스는 현장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자세한 보고를 듣고 있고 이론적으로 일을 꿰고 있다는 듯 말한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여태 두 번 보았다.

이 조직을 법인으로 만들기 위해 일을 볼 때, 본인의 조직에 들일 새로운 을의 면접을 준비할 때.

이제 나도 곧 그녀에게 불려간다면 세 번이 되겠지.

더럽고 아니꼽고 치사해서 일을 그만둔 적은 극히 적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봐서 내가 얼마나 내 자리에서 못나게 행동했는지 스스로 수긍이 된다면 사직서를 낼 생각이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했을때 지난 일년간 부끄럽게 일했던 기억은 없다.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헤어지긴 싫고, 집 문제도 있어서 당분간은 여기 있고 싶다.

만일 2학기에 새로운 선생님들이 오신다면 그 분들과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

직장의 스트레스는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달려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