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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정리가 되었다, 이제.

진상의 일단이 얼핏 보인 듯했다.

 사장이 무슨 말을 했든,직원으로서 한 번은 계약을 맺은 나의 주장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상사의 태도로서 이상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들으면 그가 궁지에 몰리는 것이다. 그는 아는 것이다. 내 결백을.

사장의 악행을,아니,그들의 악행을.


경리 담당도 컴퓨터 담당도 아닌 나에게 장부의 컴퓨터 입력을 명령한 사람은 전무가 아닌가.

 2천만엔은 내입력 실수 때문에 증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누가 써버린 것이다.
밤에 나는 직원들 집에 죄 전화를 걸었다. 내 추리가 옳다는 확증을 얻고 싶었고,

사장과 전무를 간접적으로 규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부당해고를 주장해도 그건 딱하게 됐지만 어쩔 수없지

않아 하고 무관심하게 대꾸할 뿐 1초라도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 했다.

 

 

하략.

 

 

  쓰하라 야스미-아시야가의 전설 '물소 떼' 편 중에서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과 유사한 경험을 했다.
며칠 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식있는 어른처럼 행동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헌데 마음의 앙금은 쉽게 가시지 않았나보다.

직장을 그만 둔 지 두어달 지난 다음 지인에게 아직도 그 일이 맘에 걸린다고 했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더러 '극소심'하다 했다.
스스로 매사에 그런 편이다 생각지도 않고 그 사람 성격이기도 하니 그 말에 발끈하진 않았다.
본인이 겪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 아니던가.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좋은 사람들 속에서 보호받고 있었구나, 편한 환경에서 참 순진하게 생활해 왔구나....

세상은 정글이고 힘 있는 사람들이 약자들을 먹잇감 삼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거였구나....
앞으로 나는 더 심한 꼴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뱀처럼 악독한 혀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의 말로가 어떤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짧은 인생에선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살더라.
그러기에 나같은 약자들은 포기가 빠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관용과 지혜, 덕이 늘기보다 상대를 깎아누르고 상대의 앞길을 막는 패악함을 배우는 건 얼마나 안된 일인가.

이미 내가 어떤 소송도 할 수 없게 서류를 미리 꾸며 받아버린 그 남자에게 원망이나 미움을 넘어 연민마저 느껴진다.

 

내년에 새로운 시험이 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서인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하니 마음이 좀 정리된 건지 지금은 진정이 되었다.

 

아직 나는 앞으로가 중요한 사람이고 지난 일은 잊지 않겠지만 털어버릴 건 털어버리자.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쓰는 건 때론 고달프다.

그 댓가가 크지 않고 실망을 주더라도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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