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나면서 그녀와 나의 근무시간의 많은 부분이 겹쳐졌다.
이제 우린 서로의 동선과 동시간에 하는 일, 아이들 및 교사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일하는 스타일은 달라도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그래, 지금은 아니라도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면 서로 친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조심스러운 시간들이 지나갔다.
어제 그녀가 먼저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잠깐 이리 와주실래요?"
(지나고 보니 이 부분도 썩 유쾌하진 않다. 볼일이 있다면 자기가 내 쪽으로 오거나 적어도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싫은 소릴 해도 해야 한다는 인간적 예의 정도는 있길 바랐다.
아이들 앞에서의 내 권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게 분명했다.)
"이 페이지랑 이 페이지, 공부한 쪽수에 해당한다고 해주신 거에요?"
"네, 어차피 뒷 부분 문제 모두 개념원리를 읽어야 가능하고 계속 반복되는 부분이니까 오늘 한 번 하고 넘어갈 건 아니라서 풀었다고 방심하지 말고 제대로 읽으라고 얘기했어요. 왜요, 선생님?"
그녀는 난처한 기색으로
"그러면 안되세요."라고 했다.
"뭐가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주변에 모든 아이들이 우리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밑에 답 보고 써서 읽지도 않고 끝내는 애들이 많기 때문에 이건 쪽수에 쳐주지 않아야 해요."
"네,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하는 애들은 하고 하지 않는 애들은 하지 않아요. 뒤에 나오게 되는 문제들이 자꾸 개념을 묻는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문제를 풀기 위해선 앞 부분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 그냥 두었어요."
게다가 세 과목을 각 두 장씩 풀어야 하는데 그 방식대로 한다면 공부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지게 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도와주는 사람없이 혼자 해야하는 나도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거였다.
내 대답에도 그녀는 불만이 많은 모양이라 나는 황급히 마무리지었다.
"그러면 앞으론 쪽수에 치지 않는 걸로 할게요."
그녀는 내 상사가 아니지만 함께 협력해야할 동료고,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교사들 간에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큰 일이 아닌 걸로 그녀와 쓸데없는 다툼을 벌이고 싶진 않았다.
묘하게 기분이 거슬리긴 했지만 나는 금방 그 일을 잊기로 했다.
교사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몇 시간 후에 이번엔 말을 안듣는 아이 때문에 실랑이가 생겼다.
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녀가 불쑥 들어왔다.
실례한다는 말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아이를 향해 속사포 쏘듯 말했다.
"왜 아직도 자꾸 우니, 네가 잘못해서 혼난 건데 뭐가 서러운데?"
사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던 내용과는 조금 달라 내가 정정하려 했다.
" 그게 아니라 얘는 지금 다른것 때문에 속상하다고....."
그녀는 내 말을 자르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선생님."
그러더니 아이를 향해 또 말했다.
"그럼 네가 원하는게 뭔데, 말해봐."
당황스러워 말도 못하고 눈물만 떨구는 아이와 설익은 결론을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나간 이후에 나는 아이와 꽤 오랫동안 얘길 나누었다.
생각보다 아이의 상처는 깊었고 그걸 내가 건드려 안쓰러웠다.
아이가 속상했던 건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단순한 사실 말고도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었던 터라 아이에게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와는 풀렸지만 내가 불쾌했던 건 그녀의 태도였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껴서이기 때문일까, 자신은 선배고 늦게 들어온 후배가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해서일까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나는 나름대로 그녀가 한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 애썼지만 미처 지우지 못한 그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집에 돌아와서도
편치 않았다.
어쩌면 내가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때문에 별 거 아닌 일도 신경이 쓰이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결론 내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남 탓을 해봤자 번민만 깊어진다.
일기 내용도 길어진다.
쓰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쓰는 동안 내면은 정리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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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면서 그녀와 나의 근무시간의 많은 부분이 겹쳐졌다.
이제 우린 서로의 동선과 동시간에 하는 일, 아이들 및 교사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일하는 스타일은 달라도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그래, 지금은 아니라도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면 서로 친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조심스러운 시간들이 지나갔다.
어제 그녀가 먼저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잠깐 이리 와주실래요?"
(지나고 보니 이 부분도 썩 유쾌하진 않다. 볼일이 있다면 자기가 내 쪽으로 오거나 적어도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싫은 소릴 해도 해야 한다는 인간적 예의 정도는 있길 바랐다.
아이들 앞에서의 내 권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게 분명했다.)
"이 페이지랑 이 페이지, 공부한 쪽수에 해당한다고 해주신 거에요?"
"네, 어차피 뒷 부분 문제 모두 개념원리를 읽어야 가능하고 계속 반복되는 부분이니까 오늘 한 번 하고 넘어갈 건 아니라서 풀었다고 방심하지 말고 제대로 읽으라고 얘기했어요. 왜요, 선생님?"
그녀는 난처한 기색으로
"그러면 안되세요."라고 했다.
"뭐가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주변에 모든 아이들이 우리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밑에 답 보고 써서 읽지도 않고 끝내는 애들이 많기 때문에 이건 쪽수에 쳐주지 않아야 해요."
"네,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하는 애들은 하고 하지 않는 애들은 하지 않아요. 뒤에 나오게 되는 문제들이 자꾸 개념을 묻는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문제를 풀기 위해선 앞 부분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 그냥 두었어요."
게다가 세 과목을 각 두 장씩 풀어야 하는데 그 방식대로 한다면 공부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지게 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도와주는 사람없이 혼자 해야하는 나도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거였다.
내 대답에도 그녀는 불만이 많은 모양이라 나는 황급히 마무리지었다.
"그러면 앞으론 쪽수에 치지 않는 걸로 할게요."
그녀는 내 상사가 아니지만 함께 협력해야할 동료고,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교사들 간에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큰 일이 아닌 걸로 그녀와 쓸데없는 다툼을 벌이고 싶진 않았다.
묘하게 기분이 거슬리긴 했지만 나는 금방 그 일을 잊기로 했다.
교사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몇 시간 후에 이번엔 말을 안듣는 아이 때문에 실랑이가 생겼다.
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녀가 불쑥 들어왔다.
실례한다는 말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아이를 향해 속사포 쏘듯 말했다.
"왜 아직도 자꾸 우니, 네가 잘못해서 혼난 건데 뭐가 서러운데?"
사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던 내용과는 조금 달라 내가 정정하려 했다.
" 그게 아니라 얘는 지금 다른것 때문에 속상하다고....."
그녀는 내 말을 자르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선생님."
그러더니 아이를 향해 또 말했다.
"그럼 네가 원하는게 뭔데, 말해봐."
당황스러워 말도 못하고 눈물만 떨구는 아이와 설익은 결론을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나간 이후에 나는 아이와 꽤 오랫동안 얘길 나누었다.
생각보다 아이의 상처는 깊었고 그걸 내가 건드려 안쓰러웠다.
아이가 속상했던 건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단순한 사실 말고도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었던 터라 아이에게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와는 풀렸지만 내가 불쾌했던 건 그녀의 태도였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껴서이기 때문일까, 자신은 선배고 늦게 들어온 후배가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해서일까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나는 나름대로 그녀가 한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 애썼지만 미처 지우지 못한 그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집에 돌아와서도
편치 않았다.
어쩌면 내가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때문에 별 거 아닌 일도 신경이 쓰이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결론 내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남 탓을 해봤자 번민만 깊어진다.
일기 내용도 길어진다.
쓰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쓰는 동안 내면은 정리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