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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토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강아지를 키우겠다"를 선언한 지 1년만에

              어제는 암수 토끼 한 쌍을 더 데려왔다.

              집엔 이미 클 대로 큰 징글맞은 수컷 비글이 사료를 축내고 있고

              종을 알 수 없는 강아지 두 마리도 이미 몇 개월째 앞마당이 제 집인양

              활보하고 있는데 말이다.

             

              데려온 토끼 종류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니 대충 이 일기 속지의 토끼와

              외모가 비슷하다.

              한 놈은 털빛이 하얗고 한 놈은 검은색 점박이다.

              예쁘게 생긴 게 꼭 성깔 있겠다 싶었는데 짐작대로 둘 다 얌전하진 않다.

 

              밤늦게 데려온지라 시끄럽게 부스럭 거리는 걸 참아가며

              방 안에서 밤을 보내게 하고 오늘 아침에 청소기를 돌릴 때 잠깐

              밖에 내다 놓았는데 이 성깔 있는 망나니 토끼들이 그 새를 못참고

             갇혀있던 케이지의 천장을 점프해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용감하게(?)

             영광의 탈출을 감행했다.

 

             덕분에 나는 한 시간동안 그 놈들을 쫒아다니느라 힘을 뺐다.

             아아, 그 놈들은 백 미터를 젖먹던 힘을 다해 뛰어도 20-22초가

             최고 기록인, 그야말로 내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재빠른 놈들 이었다.

 

             털빛이 하얀 놈은 일단 출입문을 모두 닫아 더 이상 도망을 못 가도록 해 놓고

             그  사이 문을 박차고 나가 도로로 뛰어들기 일보 직전의 점박이 토깽이를

             나는 뭐 빠지게 쫓아갔다.

             일단 도로쪽으로 나가 재수없게 사고를 당하지 않게 거꾸로 집쪽으로 몰아가니

            드디어 녀석은 마당 한 구석의 작년 가을 쯤에 베어버린 장미나무 덤불 속으로

             쏘옥 몸을 숨기고 말았다.

 

            이름을 아직 짓지 않아 "토깽아, 이쁜 토깽아, 이리온."

             하고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품에 답싹 안기길 은근 기대하며

            녀석에게 손짓했는데 내 순진한 기대따윈 우습다는 듯 그 놈은 

            낮은 포복으로 벽과 눕혀진 장미나무 더미 사이에 생긴 폭이 약 7-8센티

            쯤 되는 공간 사이로 사사삭 민첩하게 기고 있었다.

 

            '머리카락 보이거등? 망할 놈의 토깽이, 잡히면 보자잉.'

            이를 꽉 깨물고 덤불 위를 올랐는데 이미 갈색으로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였지만 여전히 가시는 위협적이라 피부가 여기저기 긁히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점박이 토깽이는 다가오는 내 발소리를 피해

           반대방향으로 요리조리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어찌나 재빠른지 그만 잡는 걸 포기할까 싶다가 그 하는 양을 보자니

           번뜩 퇴로를 차단하고 구석으로 몰아 잡자는 생각이 들었다.

 

            '으흐흐흐' 나는 음흉한 웃음을 속으로 삼키고 바로 눈에 띄는 가시가 박힌

            나뭇가지를 집어들어 막다른 골목에 끼워넣었다.

           그런데 발밑의 가시 덤불이 여간 움직이기 불편했을 뿐 아니라

           저쪽 출구까지 꽤 길었던 지라 퇴로 중간을 한 번 더 끊어야 겠다 싶어

           깨진 도자기 조각을 주워 재빨리 중간에 끼우는 데 성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린 녀석의 허리께를 움켜쥘 수 있었다.

            아, 장시간 내 애를 태우던 버릇없는 점박이 녀석...

            내 품안에서 그 놈의 격렬하게 버둥거리던 몸짓은 "가만 있어, 이 녀석!"

            이라는 내 꾸지람에 금새 잦아들었다.

 

            그러나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조금 있음 집에 갈 시간인데

            나는 다시 침울해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 털빛이 흰 녀석은 포획하지 못했다.

            쫓고 쫓기는 이 숨막히는 추격전을 또다시 해야 하다니..

 

           만일 포획에 실패한다면

           마당엔 이미 새순이 돋아 먹을 건 많지만 오늘밤은 다시 꽃샘추위때문에

           기온이 많이 떨어질텐데 내일아침까지 무사할런지.

           게다가 개구쟁이 강아지 두마리에 그 큰 발에 한 번 밟히면

            헤어나지 못할 무시무시한 비글 아저씨까지...

 

            새 가정에 온 첫날 토깽이 두마리의 수난이 왠지 걱정된다.

           아니지, 사실 그것보단 말썽쟁이 이 녀석들을 돌보는게 또 내차지가 될 걸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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