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메일 주고 받은 사람이 있네요...

EVEY
연관내용 : 일반 고민

음.. 제가 학창시절에 참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성인이 되었죠 ㅎ

여튼.. 그 때 컴퓨터를 샀는데 이것저것 하다보니 채팅을 하게 됐어요.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났었답니다. 물론 가끔 변태놈들도 있었지만 상종을 안 했죠.

아, 제가 좋았다는 그 사람들도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채팅상에선 좋았어요.

 

채팅 사이트 이름이 아직도 기억 나네요. 요건 비밀.. 그냥.. 이유 없음..ㅋㅋ

그 당시 세이클럽이나 스카이러브가 굉장히 유명하고 사람이 많았었는데

그 사이트는.. 정말 촌구석.. 시골 느낌이랄까..

주소치면 바로 채팅방 목록이 쭉 뜨는.. 그런 사이트였어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면서 채팅을 할 때만큼은 아픔을 잊었습니다.

웃기죠... 저도 채팅에서 좋은 사람 만난다는거.. 믿지 않거든요.

그 땐 제가 운이 좋았죠.

그 때 제가 무슨 얘길 하고.. 들었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참 즐겁고.. 슬프기도 하고.. 그랬던것만은 기억납니다.

 

여튼.. 저보다 1살 어린 남자애를 알게 되었는데

서로 이성의 감정은 없었고 자주 이야기하면서 편한 사이가 되었어요.

몇몇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았지만

1, 2년 내로 다 끊겼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 건 그 아이 한 명 뿐입니다.

 

최근에 메일 온 건.. 몇 달 전입니다.

전 메일이 온 걸 알았지만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채팅은 그 몇 달로 끝을 내고

언제부턴가 바쁜 삶을 살게 되면서

더 이상 그 아이와 공유할 것이 없어졌어요.

그러다보니 더 이상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죠.

그 메일은 3개월이 지나면 보낸 사람이 수신확인을 할 수 없어요.

3개월은 내 할 일 하며 살다가

3개월 지나면 열어보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제가 확인했다는 걸 아는 건.. 싫었거든요. 미안하니까.

그래요. 좀 치밀하죠.. 제가 이래요 ㅋ 

 

그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무슨 일에선지 대학은 가지 않았어요.

왜 안갔느냐고 물어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물어본 것 같긴 한데..

명확한 답변을 못 들었던 것 같네요.

 

그 아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전화한 적이 없었어요.

간간히 문자는 했지만요.

서로의 얼굴도 모릅니다. 사진 한 장 주고 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좀 친해지면 바로 사진 달라거나 번호 달라거나 하던데..

자신의 주변 사람.. 특히 친구 얘기도 전혀 한 적이 없고..

참 소극적인 사람이라는 걸 항상 느꼈었습니다.

아마 한 6년 전? 아니면 그보다도 더 전부터는 제가 먼저 메일로 연락하지 않았음에도..

그 맘때쯤 핸폰 번호까지 바꾸고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저에게 다시 핸폰 번호를 물어보지 않는 것 보면.. 자신도 아는 것일텐데

항상 먼저 연락 하는 것이.. 저 말고는 연락할 사람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핸폰 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언제부턴가 일방적인 연락..

저는 해 줄 말이 없음을 느꼈기 때문에 그랬었네요.

여기서 다 밝히긴 그렇지만.. 참 외로운 아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 아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내가 그 때의 내가 아니라서 연락하고 싶지 않은 마음임에도..

메일에 답장을 해 주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참 긴 세월..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제 곧 정말.. 그 인연을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젠 제 자신이 그 때만의 감정과 기억으로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기에는..

너무 변해버렸네요.. 제 상황까지도..

친한 친구 얼굴 보려고 시간 내는 것도 참 힘든데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때로는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지기까지하는 

메일 속의 사람과 계속 연락 한다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서요.

 

너무 길어서 안 읽으셨다 해도 이해합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누군가 읽어주고 이해해 준다면 좋지만..

내 스스로 그 아이에게 미안해서..

차라리 그 아이가 바쁜 삶을 살게 되어, 혹은 여자 친구가 생겨

연락을 먼저 끊어준다면..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여서..

사죄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마음이 너무 여린 아이임을 알기 때문에..

 

저도 치밀하고 못돼먹었을 때는 정말 못됐는데

이런 건 못하겠네요.

그냥 그 아이가 잘 되길 바랄 뿐입니다.

잘 되서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잊어버렸으면..

 

미안하구나.

외로운 네 옆에 그냥 아는 사람으로라도 있어주지 못해서.

더 큰 세상에서.. 많은 사람 만나면서..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2010-02-25 00:12:54

누구에게나 빛은 바랬더라도 포근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한명 정도는 있겠죠. 어릴 적 잡지에서 펜팔 코너를 보고 연락해 편지를 주고받다가 삶에 치이고 성장해가며 연락이 끊겨 '유년시절 즐거운 기억을 준 아이'로 기억에 남긴 사람..이라던지, 한 때 메일이나 채팅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누군가에게 현실의 내 모습만이 아닌 감성을 내밀어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래던, 마음의 어깨동무를 하던 사람..이라던지.
세월이 흘렀고 좀 더 신경쓸 것들이 늘어났다 해서 그 사람과의 기억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겠지요. 그 때는 외로움을 많이 탔던 그 사람이 10년의 인연에게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또는 과거 속에 깃든 상대를 앨범 꺼내보듯 안부를 묻고픈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2010-02-25 00:13:56

저도 메일을 주고받으며 마음속 이상형으로 생각하던 사람과 연락이 두절돼버려서 굉장히 속상했는데.. 그사람의 발목을 잡을 마음같은 건 전혀 없지만 그냥 그 때의 좋은 기억을 남겨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담아 반갑게 인사하고싶은 마음이 현실화되지 못해 미련이 남을 때는 종종 있어요.
그게 상대에게 이렇게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자제해야겠다 싶네요.
2010-02-25 00:17:04

아직 평생을 살아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인생을 마무리 할 때 '현재는 함께하지 못하는 것' 들 중 가장 아쉬운 건 아마 사람이 아닐까..생각해요.
좋은 추억이라 생각될 수록 당시 기억의 변질을 원하지 않아 접촉하고싶지 않을 때가 있죠.. 혹시 그런 마음이려나...
뭔가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님을 놓고 연락한건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짧게나마 서로 인사라도 주고받으면 옛날 생각도 나고 좋을텐데..^^
전 그 상대방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약간 아쉬움이 남네요..
EVEY
2010-02-25 00:31:41

두 번째 댓글 달아주신 분께 죄송한 마음이네요. 그 아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이 글을 보실 분도 계실 것이란 생각은.. 제 생각이 짧았네요. 구차한 변명을.. 하고는 싶지만 더 이상은 그 아이를 욕하는 것 같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분께 님이 불편하다라기보다는 그 분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가는 걸거에요. 저의 경우는 그러하네요. 제가 말재주가 없는 것이 안타깝네요. 이 느낌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2010-02-25 00:37:47

1~3번째 댓글 모두 한사람이랍니다^^
가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는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을 나라면- 하고 생각해보시길 권해봅니다. 그래서 이해가 될 때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거든요..^^ 불편함을 느끼는 데는 물론 상대방이 주는 불편함도 있겠지만... 본인 마음에 여유가 마땅치 않아서 당시의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겠죠.. 사는게 바쁘면 친한 친구의 연락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것처럼요..^^ 죄송할 건 없구요~ 좋은 기억이 혹시나 바래지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안타까워서요.. 그 친구분을 욕되게 한다고는 느끼지 않았답니다^^ 그분 역시 여유가 없어서, 감정이 전염되듯 님께서 불안을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외로워하는 사람을 책임(?)질 수 없을 땐 피하게 되기도 하죠.. 살다보니(라는 것도 핑계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경험이 많아서;
2010-02-25 00:41:58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기억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그것을 소중히 여겼던 마음을 서서히 잊어가곤 하죠.. 사는게 바쁘기도 하고, 익숙해지기도 하고, 다른 더 소중한 것들이 생기기도 하구요. 꼭 연락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불편함이나 부담을 느끼지 마시고, 옛친구가 나를 기억해줬구나~라고 한번 좋게 생각하고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핸드폰 번호가 바뀐 상태인데도 굳이 연락처를 물어오지 않았다는 건... 그분도 님을 가상의 상대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건 아닐까..생각도 해봅니다. 적당한 거리가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처럼... 주제넘은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났건.. 누군가에게 여전히 기억된다는 건 그래도 참 반가운 일인 것 같아요~
EVEY
2010-02-25 01:08:07

댓글 감사합니다. 근데 저에게는 그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저만 생각했다면 이미 그 6, 7년 전에 연락이 끊겼을거에요. 관계를 맺고 끊음에 있어서 참는데까지 참고 참다 나중에 못 견디겠어서 도망치거나 직설적으로 토해버리는 성격이라..; 여하튼.. 이렇게 모르는 사람의 글에 정성껏 댓글 남겨주신 것.. 그 마음이 참 감사하네요. 고맙습니다.
허벌불쌈
2010-05-02 22:36:01

나에게는 추억 ... 그 사람에게는 상처??
지워버리지 못하는 추억은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합니다.
그런게 바로 상처가 되죠!!
님에게 소중한 추억이라면 어쩌다 생각날때 한번쯤 연락하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잠시라도 소중했다면...... .
루인
2010-07-23 22:41:15

얼굴도 모르고 만난적도 없는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는다는게 참 부럽네요.
친한친구들과 만나는것도 좋지만,
때로는 그렇게 얼굴도모르는 사람에게 더 솔직해지고 편해질 수도 있을것 같아요.
바쁜 일상에 점점 옛날의 소중했던 것들을 잊게되지만,
가끔씩 시간을 내서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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