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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나라
이제는 완성할 때다. 중반기의 완성을 위해
사랑과 결혼과 삶

사랑과 결혼은 구분되어야 한다.
결혼은 철저한 계약이지만 사랑은 무조건 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주고, 그저 바라보고 소망하며 기다리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결혼은 서로 같이 살겠다는 계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우리 이렇게 같이 살겠다고 계약을 합니다."라고 식을 올린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많은 사람 앞에서 "나는 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합니다."라고 선포하고 계약식을 갖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있다. 항상 기다리며 언젠가는 내 사랑을 알아 주기를 기다리며 소리없는 갈망으로 기다리는 사랑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무조건적이지 계약을 맺어 속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혼은 할 수 있다.
또 아주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과는 관계없이 서로의 계약을 철저히 지켜주면 되는 것이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면 사랑이 식어지면 이혼해야 하는가?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구속하지 못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오직 소망하며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놓아 주어야 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불행한 것일까?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만들어 주기 위한 자신의 희생인가?
왜 사랑을 하는 것일까?
사랑하면 비록 내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혐오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사랑한다는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행복의 근원이다. 그렇기에 사랑한다.
사랑은 책임이 따르는 것일까?
사랑은 오직 주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사랑을 받을 때는 책임이 따르는 것일까?
사랑은 너무 아름답기에 결코 확인하려 하지 말자. 단지 주는 것이고, 소망하며 기다리는 것일 뿐.
그래서 삶을 사랑한다. 삶이 끝나기를 막연하게 기다린다. 또 그것을 안다.
그렇기에 삶을 사랑하며 오직 희망을 가지고 소망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삶은 전혀 나의 생각과는 달리 미친년 처럼 이리저리 날뛰기도 한다.
그것을 내가 구속하고 어찌 간섭하고 요구할 수 없다.
단지 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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