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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나라
이제는 완성할 때다. 중반기의 완성을 위해
1차원의 세계에서

예전에는 종이에 글을 남겼지만 지금은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남긴다.
글을 남기는 이유는 자신이 살았다는 증거이기도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꼭 남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나를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호기심이 없다면 아마도 그만큼 늙었거나 삶에 지쳐버린 경우일 것이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보면 볼수록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세상이 어렵고 힘든 곳이라고도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세상은 달라진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내가 이곳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은 나라는 개체에 갖혀있기 때문이다. 나의 개체에서 벗어난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수많은 개체들이 종합한 데이터는 어디에서 분류되고 검토되고 종합되는 것일까? 바로 그것이 본래의 내 모습이다.
시간과 더불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공간은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 시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대하는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의 1차원에 살고 있다.
계속되는 순간에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결코 있다고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한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확신도 없다.
정확하게 위치만 있을 뿐 실제는 없는 것이다.
바로 시간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시간의 2차원 세계는 어떤 것일까?
과거와 미래가 같이 있고, 수많은 순간의 선택에 의해서 수도없이 많은 변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공간은 시간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시간의 2차원 세계에서는 공간의 의미는 도리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꿈속에서 느끼는 공간과 현실의 공간과의 차이가 없다. 바로 그것이 공간이고 우리가 현실로 받아들이는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시간의 3차원 세계는 또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아직은 정의하기 어렵다. 한 차원을 뛰어넘는 것도 힘든데 두차원이나 뛰어넘는 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발상이다.
자 시간의 2차원 세계에서 우리의 삶을 본다면 어떻게 보일 것인가? 
1차원인 현실에서 우리는 단순한 시간의 이동으로 수많은 선택이 눈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시간의 2차원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없다. 어느 곳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설이 단순히 이 광대한 우주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이 시간의 2차원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던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지금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도리어 과거 수백 수천년 전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시간의 1차원을 즐길지도 모르지.
이렇게 시간의 1차원을 즐기는 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전자오락을 시작할 때 "싱싱카"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 도로는 달려 내려간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핸들을 좌우로 돌려 장애물을 피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전자오락의 "싱싱카" 수준의 삶인 것이다.
우리가 바로 이 게임을 하고있다. 때로는 택하지 않은 어려움에 빠져들기도 하고 처음부터 만난 장애물에서 넘어져 버리기도 한다.
앞으로 더 발달한다면 어떤 게임이 가능할까?
아마도 사람들은 시간을 멈추게도 하고 다른 설정에서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삶은 무척이나 달라진다. 현재도 약간 그런 방향으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볼 수도있다. 왜냐하면 과거나 현재나 절대시간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또 생각을 서로 주고받거나 또 공간을 이동할 때 과거와 비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바로 말을 사용하면서부터 인간의 운동 범위가 달라

푸른지성
2002-12-27 15:26:46

제가 독자좀 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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