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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내린다

2023년 1월 26일 그린하우스 일기를 쓰다.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내린다. 올해는 유달리 눈이 많이 내린다. 눈이 내리면 마음이 포근하다. 눈을 맞으며 공원을 걸어본다. 발밑에 눈 밟히는 소리가 보드득 보드득 들려온다. 하얀 세상으로 덮어버린 공원산책로의 숲속 도서관 생각하는 마스코트만 눈을 쓸어내린다.

오늘은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 오래를 독서하였다. 오래 오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를 '경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경탄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이 특수한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그 관념 안에서 확고하게 머문다."

엘리자베트는 가브리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앚은 태양"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가브리엘에게 항상 '경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 위해, 현명한 엘리자베트는 '범상한 관계'를 초월하려고 노력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사랑은 지속될 수 있으니까.

"그녀의 검은 눈에서 금빛 광채가 반짝거렸다. 희로애락의 그 어떤 감정으로도 결코 꺼트리지 못할 장난기였다. 가브리엘은 전율을 느꼈다. 그는 여자를 잘 몰랐다. 아내가 있긴 하지만,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아내라는 존재는 청혼에 응하는 그 운명적인 순간부터 여자라는 종에서 벗어나 별도의 잡종이 된다. 요컨대 가브리엘은 40년을 살도록 아직 이렇게 장난기 가득한 여왕 스타일은 만나 본 적이 없다."

"혼외의 사랑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양시킬 수도 있고 타락시킬 수도 있어요. 혼외의 사랑은 결혼 생활과 달라요. 게으르게 마냥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죠. 끊임없이 온갖 것을 파악해서 범상함을 초월해야 해요. 아니면 차츰차츰 너절한 타성에 빠져들어 그저 생리적인 욕구나 채우려고 만나는 관계가 되는 거예요."

"그는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입술과 가슴과 엉덩이를 놓고 보면 어른인데, 몸의 나머지 부분으로 보면 품에 안아도 무게가 느껴질것 갖지 않은 소녀였다. 이를테면 그녀의 입술과 가슴과 엉덩이와 성기는 소녀의 몸이라는 바다를 둘러싸인 성숙한 여인의 섬들이었다."(p163).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사랑할 것, 나의 이성이 범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줄 것, 내 말을 듣기 전에는 어떤 것도 믿지 말 것, 최종적인 판단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로지 내 말을 믿을 것"(pp317-318)

"그는 그녀의 두려움을 덜어 줄 양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주고, 관자놀이와 목덜미와 두 팔을 애무해 주었다. 손끝이 연한 살이 그녀의 살갗에 닿을 때면 늘 그랬듯이, 욕구가 솟구치면서 아랫배가 아릿아릿했다. 그녀를 갖고자 하는 욕구, 그녀의 몸속을 여행하고 싶은 욕구, 온갖 부드러움과 다사로움의 원천인 그녀의 내부에 웅크리고 싶은 욕구, 그 욕구가 너무나 강하여 이제는 그녀 대신 그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도 자기처럼 다시 부들거리기를 바라면서 집게손가락으로 젖가슴과 허벅지의 가장 부드러운 부위를 가만가만 문질렀다."(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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