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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2023년 2월 21일 그린하우스 일기를 쓰다.

오랜만에 이장로님, 전목사님, 김장로님과 안부 전화를 나누었다. 전화를 드려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마음 먹은대로 되지를 않는다. 반가운 목소를 들으며 건강을 묻고 하는 일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었다.

오늘은 레오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과 이귤희의 다락방 외계인을 갑작스럽게 만나 읽게 되었다.

어느 날 왕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만 있다면 ......,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이고, 내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무엇이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을까?'

"어제 나를 만났을 때 당신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동정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나를 대신해 밭이랑을 일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소? 아마 당신은 왔던 길을 혼자 돌아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까 그 사내가 당신을 덮쳤을 것이오. 그러면 당신은 나와 함께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거요. 그러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밭이랑을 일구었던 바로 그 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나에게 선행을 베푼 일이라오." (pp 23-24).

"치르! 치르! 제발 눈 떠. 눈을 뜨라고!" 노아가 애원해도 치르는 꼼짝하지 않았어. "제발! 눈만 뜨면 뭐든 다 해 줄게. 제발!" 노아는 치르에게 못되게 군 것만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 "이제부터 여기 왕은 나, 위대한 링가별의 지도자 치르님이다. 알았어?" 간신히 눈을 뜬 치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어. 치르가 말을 해 다행이었고, 곧 죽어도 다락방 왕이 되고 싶어 하는 게 웃겼지. 노아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치르가 아무리 우겨도 어차피 다락방 주인은 삼촌이니까 말이야. (pp 42-43).

강신주의 감정수업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을 읽으면서 사랑의 비극 잔혹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잔혹함이나 잔인함이란 우리가 사랑하거나 가엽게 여기는 자에게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아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내가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그녀는 그를 단 1분 1초도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단 하루도 그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음을 유사시 다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지루한 사람 같으니, 오, 그가 얼마나 그녀를 지루하게 했는지. 지겨워! 지겨워!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생각했지만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는 유머 감각도 없었고 그의 건방진 우월감과 그의 차가움, 그의 자제력이 그녀는 혐오스러웠다. 아무것에도,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관심 없을 땐 누군들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그녀는 그가 구역질났다. 그가 그녀에게 키스하도록 놔둬야 하다니 역겨웠다." (p 71).

"세상에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많게 마련이고, 어느 정도 높은 지위의 사람이 우쭐거리지 않고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에 못할 게 없다고 말해 준다면 십중팔구 그를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물론, 그의 아내가 있죠. 능력 있는 여자랍니다. 그녀는 지각 있는 여자이고 그녀의 충고는 언제나 새겨들을 가치가 있죠. 찰스 타운센드가 그녀에게 의지하고 사는 한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일 없이 안전할 겁니다. 그게 정부기관에서 성공하는 남자의 필수 요건이죠. 똑똑한 사람은 필요치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생각이 있고 생각은 문제를 일으키죠. 매력 있고 수완이 있지만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으로 믿을 만한 그런 남자를 원하죠. 오, 맞습니다. 찰스 타운센드는 정상까지 올라갈 겁니다." (pp 141-142).

"월터를 경멸했던 자신이 이제 경멸스러웠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분명 알면서도 자신에 대한 그녀의 평가를 비통함 없이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바보는 그녀였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이제 그녀는 그를 혐오하지도 그에게 분노를 느끼지도 않았지만 약간의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꼈다." (p 173).

"왜 스스로를 경멸하죠?"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아까 하다 만 대화를 계속하려는 듯 물었다. 그는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주시했다. 먼 곳에서부터 생각을 끌어모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차갑고 흔들리지 않는 꿰뚫는 시선을 감당할 수 없었다. " (p 181).

"월터, 제발 날 용서해 줘요." 그녀가 그 위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녀는 그가 부담감을 견딜 수 없을까 봐 두려워 그를 동요시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너무나 미안해요.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어요. 뼈저리게 후회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사랑."
"오, 소중한 사랑, 여보,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면...... 당신이 날 사랑했다는 걸 알아요. 내 자신이 증오스러워요...... 부디 나를 용서해 줘요. 이제 나에겐 더 이상 참회할 기회가 없쟎아요. 내게 자비를 베풀어 줘요. 제발 날 용서해요."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의식 없이 회칠한 벽을 응시했다. 그녀는 그 위로 몸을 굽히고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했다. 그때 그가 또박또박 말했다. "죽은 건 개였어." (p 258-259).

"자유가 찬란한 기백으로 그녀를 유혹했고 세상은 그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걸어 나갈 수 있는 드넓은 평원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정욕과 상스러운 열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깨끗하고 건강한 정신적 삶을 영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황혼 무렵 논 평원 위를 유유히 나는 흰 해오라기가 되었고 그녀의 마음도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휴식을 취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노예에 불과했다. 나약하고, 나약한! 한심하고, 가망 없는, 창녀." (p305).

"이거 한 가지만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저는 바보였고 사악했고 가증스러웠어요. 그리고 끔찍한 형벌을 당했죠. 결단코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제 딸을 보호하겠어요. 나는 그 애가 거침없고 솔직하기를 바래요. 그 애가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자유로운 남자처럼 인생을 살면서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요." "이런 얘야, 마치 쉰 살은 된 것처럼 말하는구나. 네 앞에도 남은 삶이 있쟎니. 고개를 떨어뜨려서는 안된다." 키티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요. 전 희망과 용기가 있어요." 과거는 끝났다. 죽은 자는 죽은 채로 묻어 두자. 너무 무정한 걸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동정심과 인간애를 배웠기를 바랐다. (p 328-329).

이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던 키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월터에게 눈물로 용서를 구한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아직도 자신을 경멸하느냐고 묻는다. 죽어 가면서도 월터는 키티에게 잔인하게 군다. "아니,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마침내 월터는 "죽은 건 개였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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