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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는 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다

2023년 3월 25일 그린하우스 일기를 쓰다.

광복회 서울시지부 주관 독립운동사적지 탐방 2코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 창덕궁 돈화문,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성정각, 낙선재 등을 둘러보면서 정명희 해설사를 통하여 조선, 대한제국의 역사와 일제의 침략으로 왕을 꼭두각시처럼 대했던 저들의 만행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지난 주에 환구단, 아관파천 고종의 길에서 만났던 고종처럼, 순종도 저들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하여 고뇌하였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조선의 왕으로서 끝까지 쓰러져가는 나라를 위하여 마음 아파했던 왕으로서의 슬픔을 함께하며 그 길을 거닐어 본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그여자네 집 마른 꽃과 환각의 나비를 독서하였다. 마른 꽃에서 홀로 된 어머니를 위하여 격에 맞는 사람과 인연을 만들어 주려는 딸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엄마, 조박사님 사랑해?" 그때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델 뻔했다. 폭소가 치받쳐 사레가 들리면서 들고 있던 잔까지 엎질러버렸기 때문이다. '그 늙은이'가 '조박사님' 으로 변한 것도 우스웠고 그가 그렇게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그 늙은이가 박사님이 됐는데 그럼 안 우습냐?" "엄마가 좋아하는 걸 보니까, 사랑하는 거 맞죠?" 그러면서 입을 조금 비죽했는데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나 딸이 쓸쓸해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조만간 나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상태를 더는 즐기지 않을 각오를 한다는 것은 딸이 지금 쓸쓸해하는 것 몇 배 더 쓸쓸한 일이 되겠지만 마냥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엄마, 혹시 형국이 형석이 눈치가 보여 마음을 못 정하시는 거면 염려 말아요. 내가 엄마 위신 조금도 안 떨어지게 걔들을 이해시킬게."
"요는 네 에밀 시집을 보내겠다는 게냐, 시방." "사랑하시쟎아요? 살기가 어렵거나 모시겠다는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재혼, 얼마나 근사해. 누가 뭐래도 난 엄마를 변호하고 자랑스러워할 거야."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랑 타령을 하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속으로는 제까짓 게 사랑에 대해 뭘 안다구, 사랑이 별거라던? 인생 그 자체일 뿐인것을, 이렇게 가볍게 만들려고 할 수록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다."

"그 며느리 요새 세상에 드문 효분가보다." "그럼, 엄마.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그래도 홀시아버지 모시기가 보통 힘들겠수. 힘들 때마다 자원봉사하는 셈 친대요."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순간적인 분노와 연민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딸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얘야, 형숙아, 잘 들어라. 이 에미는 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다." 딸 아이도 그 말에는 머쓱해서 더는 아무 말도 안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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