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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다

2023년 3월 31일 그린하우스 일기를 쓰다.

매일 마을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가 빠뜨린 것이 있어 집에 다시 다녀오는 바람에 시간대가 맞는 광역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정원이 꽉 차니까 더 이상 승차를 하지 못하고 무정차로 정류장을 통과한다. 시민의 안전을 위하여 시행하는 제도지만 출퇴근 길 시민들의 불편이 많을 것 같다. 오랜만에 탑승하였다가 종로까지 가는 다른 승객을 태우지 못해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연세 지긋한 노인이 방문을 하였다. 우편물을 보여주는데 건강보험공단에서 발송한 진료 받은 내역과 앞으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기일을 통보한 내용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여 확인하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담당부서를 요구한다. 할 수 없이 희귀성 질병 처리부서인 만성질환팀으로 안내를 하였다. 우리네 노인들은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버럭 화부터 내는데 고쳐야 할 우매한 버릇이다.

2022년도 독자들이 뽑은 대중소설 1위 파친코를 독서 하였다. 1권을 읽고 2권을 보름만에 읽게 된다. 도서관을 통하여 읽다 보니 독자들이 워낙 많아 순번을 기다리다 보니 오늘에야 내 차례가 되어 단숨에 읽게 되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은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그러한 인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양진은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해나가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장애인과 산다는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유일한 자식이자 정상인으로 태어난 딸 선자를 묵묵히 키워나간다.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란 선자는 안타깝게도 엄마 나이 또래의 생선 중매상 한수에게 빠져 결국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불행의 나락에 빠진 선자는 목사 이삭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구원을 받게 되고, 둘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 오사카로 향한다.
일본 오사카에서 한수의 핏줄인 아들 노아가 태어나고, 이삭의 핏줄인 동생 모자수가 태어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노아는 모든 면에서 이삭을 닮았고, 모자수는 이삭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며 성장한다.
가난과 차별로 힘들게 살던 중 이삭은 신사 참배 문제로 감옥에 갇히고 급기야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고 만다. 남편을 잃은 선자는 온갖 차별과 냉대, 가난을 견디며 김치와 설탕과자 노점상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운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선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야쿠자의 두목이 된 한수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한수는 선자가 일본에 도착한 후, 선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남모르게 도움을 주어왔던 것이다.
모자수와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조선인이라고 무시당하고 놀림 받는 삶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두 아이는 그러한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노아는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극복하고자 공부에 파고들고, 심지어는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반면 모자수는 조선계 일본인에 대한 경멸과 괄시에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본인 입으로 '나쁜 조산인'이 됐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범죄나 부정적인 거래를 피하고 정직하게 살아간다.
일본의 패망을 미리 알아챈 한수의 도움으로 선자 가족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장으로 피신하지만, 홀로 떨어져 지내던 요셉은 원폭의 피해로 심한 부상을 당한다.

'파친코'는 운명을 알 수 없는 도박이라는 점에서 재일교포들의 삶을 상징하는 좋은 은유라고 할 수 있다. 뜻밖의 횡재를 할 수도 있지만 일시에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친코 운영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안겨줄 수는 있으나 야쿠자와의 연관성 때문에 폭력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들은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다. 편견으로 점철된 타국에서 '파친코'는 재일교포들에게 돈과 권력과 신분의 상승을 가져다줄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파친코는 단순한 도박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가 얼마나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를 새삼 개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최대의 피해자는 국민이지만, 아무도 국민이 당하는 고난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나라를 잘못 운영해서 나라를 배앗기고 국민을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떠나보낸 우리의 무능한 정치가들은 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파친코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것은 곧 어려운 시기에 문제가 많은 나라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역사가 우리를 망치고, 정치가들이 나라를 망쳐도 국민들은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파친코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희망과 극복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할머니가 된 선자는 남편 이삭의 묘를 찾아간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먼저 간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큰 아들은 자살하고, 둘째 아들은 파친코 운영자가 되었으며, 손자도 파친코 사업을 가업으로 물려받게 된 현실은 이상주의자 목사였던 이삭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그녀가 죽은 남편의 무덤에서 흘리는 눈물은 사실 모든 재일교포들의 눈물의 상징일 것이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성 빅토르의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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