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25분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키를 돌리고 목적지를 클릭하니 4시간이 소요된다고 뜬다. 천천히 여행하려던 나의 기쁨이 사라진다.
오전 8시 55분 동서울 톨케이트를 통과하는데 30분을 소비하였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고속도로 양 편으로 5월의 싱그러움을 발산하는 소나무, 아카시아, 오동나무, 밤나무, 담쟁이넝쿨나무 등 이름모를 초록의 나무들이 기쁨을 선물한다. 송전탑에 걸린 나무들이 바람과 함께 나폴거리며 눈에 들어온다.
오전 9시 10분 번천 졸음 쉼터에서 휴식을 취한다. 오랜만에 길게 줄지어 있는 여행객들을 만난다. 자동차들의 움직임은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것 같다. 과속단속은 소용이 없이 잠만 자는 것 같다. 원주 방향으로 빠지는 차량들로 인해 더 지체가 되는 것 같다.
오전 10시 호법 갈림길에서 또 한 번의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지체가 오래 지속 된다. 책한민국의 꼬마철학자 두발로, 책읽기좋은날의 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를 경청하면서 시간과 함께 느긋한 동행을 한다.
오전 10시 30분 GPS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메시지가 뜬다. 여행로그에 문의를 한다. 위치 앱을 컸다 다시 켜본다. 작동이 된다는 메시지가 도착한다. 도로가에 바라보는 논에서는 모내기를 한 초록의 작은 벼들이 운동장에 조무래기들이 반듯하게 서있듯이 여리고 아름답기만 하다.
오전 11시 45분 중부고속도로의 지체가 반복된다. 서청주 인터첸지에서 새로운 길을 안내한다. 서청주, 옥산, 세종방향으로 길을 안내한다. 네비게이션에게 나를 맡기고 알려주는대로 따라 가다보니 공주석장리 박물관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공주, 상월, 노성, 광석, 논산 반가운 표지판들이 스쳐 지나간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여 1시간 더 지체될거라고 형님을 모시고 먼저 식사를 하라고 전달한다. 아침 식사를 9시에 하여 늦어도 괜챦다고 기다린다고 한다.
오후 1시 20분 5시간을 쉬지않고 달려와 시골집에 도착을 하였다. 어머니 38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한결같이 모인 우리 삼형제 어머니는 꿈속에서도 보이지를 않는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오후 2시 30분 형수님이 일하는 논산의 한김정지 한식당에서 육개장을 주문하여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였다. 형수님에게 체인점이냐고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체인점처럼 시스템에 의해 식단을 구성하여 음식맛이 정갈하고 반찬도 산뜻하니 맛이 있다.
오후 3시 30분 형님, 동생과 헤어져 노성에 위치한 윤증의 명재고택을 방문하였다. 보슬비가 방울방울 얼굴을 스친다. 전에 다녀왔을 때하고 별로 달라진게 없다. 예전에는 안채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입구를 차단하고 있다. 풍경좋은 이곳 저곳에서 휴대폰에 사진을 담아본다. 고택 주변에 노성향교가 함께위치 하고 있다. 노성산성을 찾아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보니 노성산만 보인다. 다시 네비게이션을 켜니 다른방향으로 길 안내를 한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니 병사리 방향으로 안내한다. 끝까지 가보니 산마루 언덕까지 올라가는데 산성은 보이지를 않는다. 집앞에 홀로 계시는 노인에게 산성을 물어보니 귀가 멀어서 그런지 다른 이야기만 한다. 인사를 드리고 올라갔던 자동차를 뒤돌려 큰 길까지 돌려나왔다.
오후 4시 30분 종학당을 방문하였다. 파평윤씨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1682년 현재의 위치에 백록당과 정수루, 정수암 등 세 채의 건물을 지어 건립하였다. 요즘마로 말하면 가문의 사립대학교이다.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고 한다. 파평윤씨 일가가 짧은 시일 내에 조선의 명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종학당의 특별한 문중 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오후 5시 은진미륵 관촉사를 방문하여 입구부터 걸어본다. 여기저기 시끄럽게 확성기로 노래소리가 들린다. 이런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진미륵을 보고 사진을 담기위해 왔는데 보수공사로 천막으로 가려져 있다.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오후 5시 35분 셋집매 농가맛집을 찾았다. 야채를 직접 재배하는 모습이 싱그럽다. 휴대폰에 야채들을 담았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현재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혼자서라도 식사를 하려고 출입구의 안내문을 확인하니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박종례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오후 6시 30분 서재필 박사의 본가지를 방문하였다. 오래전에 방문하였을 때는 초라한 옛집만 남아 있었는데 다 철거하고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안내판과 위치만 남아 있었다. 친구 서성원에게 전화를 하여 알아보니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관심을 갖고 추진을 하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문화역사에 관심있는 위정자들이 보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지역의 위대한 인물을 홀대하는 느낌이 든다. 지역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너도 나도 인물들을 부각시켜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후 6시 50분 견훤왕릉을 방문하였다. 오래전에 왔을 때보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볼수 있었다. 공주 왕릉에서 본 것처럼 봉분이 진짜 왕릉처럼 변신을 하였다. 논산시에서 조금 신경을 쓴 느낌이다. 오르는 산길 모습도 바뀌었다. 전에는 시멘트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화강암 돌로 바뀌었다. 새롭게 단장된 왕릉과 왕을 위한 길이 관리에 신경을 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후 7시 부모님과 할머님의 산소를 방문하여 인사를 드렸다. 풀이 산소를 덮고 있었다. 어제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예초기를 가져와 벌초를 하여야 했는데 우스개소리로 나보고 벌초를 하라고 하였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벌초를 해보지 못했다. 낫 다루는 것도 서툴고 예초기는 더더욱 사용해 보지않아 선뜻 다가가지를 못한다.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과 할머님에게 묵념을 드리고...... 산소를 깍아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만 품으며 산소를 떠났다.
오후 7시 10분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나의 추억을 그려본다. 덩그러니 자란 큰 나무 한 그루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릴적 학교생활 때 학교 둘레를 지켜오던 측백나무는 온데간데 없고 낮설은 풍경만 다가온다. 한 때는 전학년이 1500~1600명이 넘었는데 작년에 학생수가 30명이 되지 않아 연무대 초등학교에 통폐합되었다고 한다. 90년의 역사를 지켜온 추억의 학교는 사라졌는데 학교는 지금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휴대폰에 사진으로 담았다.
오후 7시 20분 학교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학용품을 판매하였던 전낙봉 친구의 집을 찾았다. 이제는 학교도 사라지고 어떻게 지내는지 친구 아버님에게 물어보니 주변에 작은 가내수공업과 공장들이 들어서 일반 식료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학생들을 상대할 때보다 수익이 괜챦다고 한다. 연로한 가운데 그래도 소일거리가 있어 두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장수하기를 기원해본다. 친구와 단둘이서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속의 여행을 떠나본다.
오후 8시 시골집에 도착하여 오늘 하루를 정리해본다.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를 마치고 포근한 집으로 귀향한 느낌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없는 남자들만 있는 집안 분위기는 썰렁하다. 형님은 TV만 보고 조카는 노트북만 쳐다보고 나는 안마기에 피로를 풀어본다. 형수님이 도착할 시간은 아직 멀기만 하다. 저녁 식사는 형수님이 도착하여 저녁 9시에 먹는다고 하였다. 나의 하루 일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 속에서 오늘 하루를 적응해간다. 오늘 점심을 오후 3시경에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는 고프지 않다.
오후 10시 형수님이 늦게 직장에서 퇴근을 하였다. 하루종일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여 그 시간에 밥을 지어 따뜻한 밥과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닭도리탕과 시금치국이 옛날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시래기국, 아욱국을 좋아하는데...... 시금치국도 맛이 있었다. 집안에 여자가 있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게 형님에게는 축복이고 나에게도 가끔 시골집을 방문하지만 얻어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오후 12시 샤워를 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본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쉽게 잠이 들지를 않는다. 아버지와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이 들었던 머나먼 시간이 생각이 난다. 나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그럼 그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아갈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도 문득 나도 나이가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면 엄마 아버지가 생가나게 된다. 언젠가 돌아갈 나의 본향 하늘나라 그곳에서 나의 엄마 아버지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꿈속 여행을 떠나본다. 오늘 하루 오랜만에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오늘 하지 못한 일정은 내일 다시 떠나보자. 보고픈 그 분들을 생각하면서 ......
오전 8시 25분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키를 돌리고 목적지를 클릭하니 4시간이 소요된다고 뜬다. 천천히 여행하려던 나의 기쁨이 사라진다.
오전 8시 55분 동서울 톨케이트를 통과하는데 30분을 소비하였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고속도로 양 편으로 5월의 싱그러움을 발산하는 소나무, 아카시아, 오동나무, 밤나무, 담쟁이넝쿨나무 등 이름모를 초록의 나무들이 기쁨을 선물한다. 송전탑에 걸린 나무들이 바람과 함께 나폴거리며 눈에 들어온다.
오전 9시 10분 번천 졸음 쉼터에서 휴식을 취한다. 오랜만에 길게 줄지어 있는 여행객들을 만난다. 자동차들의 움직임은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것 같다. 과속단속은 소용이 없이 잠만 자는 것 같다. 원주 방향으로 빠지는 차량들로 인해 더 지체가 되는 것 같다.
오전 10시 호법 갈림길에서 또 한 번의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지체가 오래 지속 된다. 책한민국의 꼬마철학자 두발로, 책읽기좋은날의 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를 경청하면서 시간과 함께 느긋한 동행을 한다.
오전 10시 30분 GPS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메시지가 뜬다. 여행로그에 문의를 한다. 위치 앱을 컸다 다시 켜본다. 작동이 된다는 메시지가 도착한다. 도로가에 바라보는 논에서는 모내기를 한 초록의 작은 벼들이 운동장에 조무래기들이 반듯하게 서있듯이 여리고 아름답기만 하다.
오전 11시 45분 중부고속도로의 지체가 반복된다. 서청주 인터첸지에서 새로운 길을 안내한다. 서청주, 옥산, 세종방향으로 길을 안내한다. 네비게이션에게 나를 맡기고 알려주는대로 따라 가다보니 공주석장리 박물관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공주, 상월, 노성, 광석, 논산 반가운 표지판들이 스쳐 지나간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여 1시간 더 지체될거라고 형님을 모시고 먼저 식사를 하라고 전달한다. 아침 식사를 9시에 하여 늦어도 괜챦다고 기다린다고 한다.
오후 1시 20분 5시간을 쉬지않고 달려와 시골집에 도착을 하였다. 어머니 38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한결같이 모인 우리 삼형제 어머니는 꿈속에서도 보이지를 않는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오후 2시 30분 형수님이 일하는 논산의 한김정지 한식당에서 육개장을 주문하여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였다. 형수님에게 체인점이냐고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체인점처럼 시스템에 의해 식단을 구성하여 음식맛이 정갈하고 반찬도 산뜻하니 맛이 있다.
오후 3시 30분 형님, 동생과 헤어져 노성에 위치한 윤증의 명재고택을 방문하였다. 보슬비가 방울방울 얼굴을 스친다. 전에 다녀왔을 때하고 별로 달라진게 없다. 예전에는 안채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입구를 차단하고 있다. 풍경좋은 이곳 저곳에서 휴대폰에 사진을 담아본다. 고택 주변에 노성향교가 함께위치 하고 있다. 노성산성을 찾아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보니 노성산만 보인다. 다시 네비게이션을 켜니 다른방향으로 길 안내를 한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니 병사리 방향으로 안내한다. 끝까지 가보니 산마루 언덕까지 올라가는데 산성은 보이지를 않는다. 집앞에 홀로 계시는 노인에게 산성을 물어보니 귀가 멀어서 그런지 다른 이야기만 한다. 인사를 드리고 올라갔던 자동차를 뒤돌려 큰 길까지 돌려나왔다.
오후 4시 30분 종학당을 방문하였다. 파평윤씨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1682년 현재의 위치에 백록당과 정수루, 정수암 등 세 채의 건물을 지어 건립하였다. 요즘마로 말하면 가문의 사립대학교이다.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고 한다. 파평윤씨 일가가 짧은 시일 내에 조선의 명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종학당의 특별한 문중 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오후 5시 은진미륵 관촉사를 방문하여 입구부터 걸어본다. 여기저기 시끄럽게 확성기로 노래소리가 들린다. 이런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진미륵을 보고 사진을 담기위해 왔는데 보수공사로 천막으로 가려져 있다.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오후 5시 35분 셋집매 농가맛집을 찾았다. 야채를 직접 재배하는 모습이 싱그럽다. 휴대폰에 야채들을 담았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현재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혼자서라도 식사를 하려고 출입구의 안내문을 확인하니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박종례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오후 6시 30분 서재필 박사의 본가지를 방문하였다. 오래전에 방문하였을 때는 초라한 옛집만 남아 있었는데 다 철거하고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안내판과 위치만 남아 있었다. 친구 서성원에게 전화를 하여 알아보니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관심을 갖고 추진을 하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문화역사에 관심있는 위정자들이 보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지역의 위대한 인물을 홀대하는 느낌이 든다. 지역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너도 나도 인물들을 부각시켜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후 6시 50분 견훤왕릉을 방문하였다. 오래전에 왔을 때보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볼수 있었다. 공주 왕릉에서 본 것처럼 봉분이 진짜 왕릉처럼 변신을 하였다. 논산시에서 조금 신경을 쓴 느낌이다. 오르는 산길 모습도 바뀌었다. 전에는 시멘트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화강암 돌로 바뀌었다. 새롭게 단장된 왕릉과 왕을 위한 길이 관리에 신경을 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후 7시 부모님과 할머님의 산소를 방문하여 인사를 드렸다. 풀이 산소를 덮고 있었다. 어제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예초기를 가져와 벌초를 하여야 했는데 우스개소리로 나보고 벌초를 하라고 하였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벌초를 해보지 못했다. 낫 다루는 것도 서툴고 예초기는 더더욱 사용해 보지않아 선뜻 다가가지를 못한다.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과 할머님에게 묵념을 드리고...... 산소를 깍아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만 품으며 산소를 떠났다.
오후 7시 10분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나의 추억을 그려본다. 덩그러니 자란 큰 나무 한 그루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릴적 학교생활 때 학교 둘레를 지켜오던 측백나무는 온데간데 없고 낮설은 풍경만 다가온다. 한 때는 전학년이 1500~1600명이 넘었는데 작년에 학생수가 30명이 되지 않아 연무대 초등학교에 통폐합되었다고 한다. 90년의 역사를 지켜온 추억의 학교는 사라졌는데 학교는 지금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휴대폰에 사진으로 담았다.
오후 7시 20분 학교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학용품을 판매하였던 전낙봉 친구의 집을 찾았다. 이제는 학교도 사라지고 어떻게 지내는지 친구 아버님에게 물어보니 주변에 작은 가내수공업과 공장들이 들어서 일반 식료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학생들을 상대할 때보다 수익이 괜챦다고 한다. 연로한 가운데 그래도 소일거리가 있어 두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장수하기를 기원해본다. 친구와 단둘이서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속의 여행을 떠나본다.
오후 8시 시골집에 도착하여 오늘 하루를 정리해본다.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를 마치고 포근한 집으로 귀향한 느낌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없는 남자들만 있는 집안 분위기는 썰렁하다. 형님은 TV만 보고 조카는 노트북만 쳐다보고 나는 안마기에 피로를 풀어본다. 형수님이 도착할 시간은 아직 멀기만 하다. 저녁 식사는 형수님이 도착하여 저녁 9시에 먹는다고 하였다. 나의 하루 일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 속에서 오늘 하루를 적응해간다. 오늘 점심을 오후 3시경에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는 고프지 않다.
오후 10시 형수님이 늦게 직장에서 퇴근을 하였다. 하루종일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여 그 시간에 밥을 지어 따뜻한 밥과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닭도리탕과 시금치국이 옛날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시래기국, 아욱국을 좋아하는데...... 시금치국도 맛이 있었다. 집안에 여자가 있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게 형님에게는 축복이고 나에게도 가끔 시골집을 방문하지만 얻어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오후 12시 샤워를 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본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쉽게 잠이 들지를 않는다. 아버지와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이 들었던 머나먼 시간이 생각이 난다. 나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그럼 그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아갈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도 문득 나도 나이가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면 엄마 아버지가 생가나게 된다. 언젠가 돌아갈 나의 본향 하늘나라 그곳에서 나의 엄마 아버지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꿈속 여행을 떠나본다. 오늘 하루 오랜만에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오늘 하지 못한 일정은 내일 다시 떠나보자. 보고픈 그 분들을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