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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당숙 오늘아침 9시경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로 장례식장을 마련할거야?"
"나주 한국병원으로 이동하려구요"
"그래 알았다."
조카 찬면의 전화다.
뭐가 그리도 급해 이런 혹한에 가셔야 하는건지...??
봄날에 가실줄 알았는데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신 형님.
1986년 2월 그렇게도 추운 겨울날.
"지금 아부지가 가셨다 어쩔거나?'
가장 먼저 비보를 전해주신 홍래형님.
81세를 일기로 드뎌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가시었다.
우리가문의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모든일을 보살폈던 형님.
이젠,
믿을수 있는 기둥마져 뽑혀버렸다.
설마?
아무리 폐암말기라 해도 그렇게 쉽게 떠나실줄 상상도 못했는데....
생전에 한번 찾아뵙지 못해 못내 아쉽고 죄를 지은 심정이다.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우리가문의 장자로 오직 한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고향땅에 묻히신 형님.
조부님이 몰려주신 전답덕분에 그래도 가난한 시절에 여유있게 사셨지만,
당신의 삶은 늘 일의 연속였고, 자식들 마져 부모를 섬기는 자식도 없어 노년에 퍽이나 고단한 삶을 외롭게 사시다가 가셔 안타깝다.
그런 와중에도 당신이 지은 쌀 40kg을 보내주셨고,간간히 전화를 해주시더니...
그 형님으로 부터 받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잠간동안의 면사무소 임시직을 하다 짤려 놀고 있을때 매일마다 동해형님을 찾아가 마치 친동생일처럼 매달리시던 그런 열정.
그 덕분에 나주 잠사회사에 잠간 취업도 했던게 아닌가?
어느 누구보담도 친밀감있게 대해주셨고,이끌어 주셨던 형님.
그 빈자리가 너무도 훤하게 보인거 같다.
생전에 가 뵈었어야 도린데 이게 무언가?
마음은 얼마나 기다리고 그랬을텐데......
가신분앞에 너무도 죄송스럽기만 하다.
사실,
너무도 일상사가 복잡했고 바빴던 것이 이유람 이유다.
정신적으로 시골을 방문하여 형님을 위문갈수 있는 상황이 없었다.
다 변명이겠지.
수원의 형님도 근무땜에 갈수 없단다.
그놈의 밥통이 뭔지?
이미 가신 형님.
모래가 발인이니 천천히 낼 정도나 하향할 생각이다.
당신이 그렇게도 애지중지 가꾸시던 땅바치 배나무 밭.
그곳에 이미 당신이 누실장소를 미리 만들어 두셨다.
"형님, 뭐 저런걸 미리 만들었어요 보기 싫은데...??"
"내가 만들어야지 누가 만드냐 그게 편해."
당신이 만든 유택.
모래는 그곳으로 편히 쉬시러 가실거다.
제수는 폐암말기 였어도 4년을 사셨는데 뭐가 그리도 급해 서둘러 금년을 넘기지 못하고 가셨는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오면서 갖가지 추억과 당신과 얽힌 일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지지만, 이젠 이게 다 과거의 편린일뿐....
고통만 받으시다가 결국은 일어나지 못하시고 가셨으니 얼마나 불쌍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