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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상윤형님과의 추억

"너 요즘 힘들지 오늘 영화보러 갈래 밤에?"

"형님도 힘들고 바쁘신데 무슨 영화보자해요?"

"내가 바빠서 그렇지 너랑 이런 시간도 자주 갖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전 걱정마세요 괜찮아요"

그 당시는 여가시간에 영화본단 것이 문화생활을 하는 최고의 여유로운 시간이다.

자주는 아니어도 나주 극장엘 함께 보곤했던 그 시절.

가끔은 성질이 급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는 성격이지만 나에겐 한번도 그런 성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군 제대후,

농촌에서 단 몇개월의 면사무소 임시직원 생활을 했지만 그것도 소위 빽있는 자들땜에 물러나야 했다.

동해형님의 주선으로 또 다시 잡은 고용직 <잠사요원>으로 산포면사무소에 파견근무를 했었다.

집에서 그 먼거리까지 통근한단것이 힘들자 아버지가 고모부와 함께 사는 상윤형님집에 머물게 했었다.

아들셋에 시부모와 성질이 급한 형님을 보살펴 사시는 형수님.

한번도 불편한모습을 보이지 않으신 온후한 성품에  불편을 모르고 6개월을 상윤형님댁에서 출퇴근했었다.

어찌 불편하지 않으랴?

식사며 챙겨줘야 할것들이 한둘이 아닌데.........


내 삶의 가장 어려운 시절에 둥지가 된 상윤형님댁.

가장 어려운 사람은 고모부지 그 누구도 어려운 사람이없었다.

근엄하시고, 원칙을 어긋난 행동을 그대로 봐주지 않은 선비형의 고모부라

세심한 신경을 쓰면서 6개월을 버텼다.

상윤형님댁에서 기저하고 살지만 나만의 방도 있는게 아니고 고모님과 한방을 쓰는데도 전혀 어렵지 않는건 고모의 세심한 배려가 곁에서 보살펴준 덕분이었다.

식구들 몰래 가만히 주머니에 넣어주신 용돈.

당신동생 아들이라고 퍽이나 배려를 해 주셨던 고모님.

갸날픈 몸매여도 93세까지 천수를 누리시다가 가셨지.

왜 상윤형님은 그런 장수가문의 피를받고 나셨는데 80을 넘기지 못하고 가신걸까?

작년의 이 무렵,일산의 원자력병원에 입원했을때 뵈었던 모습은 그래도 건강하게 보였는데.....

수술결과가 좋아 완치된걸로 알고 있어 자주 전화를 못했던게 퍽이나 죄송스럽다.

자주 자주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작년 12월 홍래형님 별세시에는 그렇게도 건강하게 보였는데 잘못본걸까?


봄부터 가을까지의 6개월 동안 한 지붕에서 세월을 함께한 인연으로 다른 형님들 보다도 각별하게 지냈는데 이런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단 한번의 시간을 갖어도 생존시에 만남이란게 얼마나 더 소중한가?


몇년전엔,

모처럼 시골에 갔을때 형수님과 셋이서 식사대접한다고 해서 식당엘 갔는데

이미 식비를 지불해 버려 얼마나 서운했던지...??


이젠,

먼 나라의 추억의 사람으로 되어버린 상윤형님.

함께할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음에도 자주 만나지  못한 것

이런 무성의가 늘 후회로 되돌아 오는데도 잘못은 오늘도 저지르곤한다.


마음의 고통과 육신의 고통을 던져버리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길

빌 뿐이다.

"상윤형님, 당신의 지난날의 추억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모든 번민잊어버리고

편안하게 쉬세요 사람은 누구나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요 그 누구도 거스릴수 없는 운명,누가 거스릴수 있나요? 고무님과의 오랫만에 회후 반갑겠네요

편히 쉬세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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