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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넘어지면 또 일어서야조 : 5 일째

상윤형님, 잊지 못하지.

-아제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지난번 몇번이나 전화해도 않받던데 무슨일있어요?

저녁에도 낮에도 했는데 전화가 안되어 정말 갑갑하데요.

나주에서 형님돌아가시고 혼자 살고 있는 형수의 전화.

고종사촌간이니 퍽이나 가까운 사이.

고종사촌이라고 다 가까운가?

<상윤형님>과는 뗄래야 뗄수 없는 특별한 사연이너무 많아 살아온 인생에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어 잊을수 없었다.

헌데, 2 년전에 결국 가시고 말았었지.

93세까지 장수하신 고모님에 비해 78 세라는 조금은 아쉬운 연세에 가시어 지금도

가슴엔 아쉬운 마음이 늘 있다.


어려운 시절에 그래도 나주시내서 농시짓지않고 여유있게 생활하고 있는 고모와 고무부의 삶이 아버지눈엔 롤모델였는거 같다.

형님에게도 그렇게도 집요하게 가구기술자가 되라고 했고, 실지로 상윤형님밑에서 기술도배우고 했지만, 맞지않아 늘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했었지.

그 당시의 잘 나가던 가구기술자인 상윤형님덕분에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시는 고모부부가 그렇게도 부러웠던가 보다.


-이건 아부지 갖다드려 아무말 말고 알았지?

고모부와 형님부부 몰래 당신의 용돈을 가만히 내 호주머니에 찔러주곤 눈을 껌벅이던 고모.

어렵게 살고 있는 당신의 동생이 늘 가슴에 걸렸던가 보다.

그런게 바로 혈육의 정이 아니고 뭣인가?

유난히도 작은 고모는 막내동생인 아버지를 좋아하고, 정을 주신거 같았다.

위로 오빠나 동생들은 하나같이 아버지같이 반듯하지도 못하고, 배움도 없어

관심밖이었던거 같다.

그건 처남중에 젤로 가까운 사이가 아버지였던건 고모부도 같았지.

큰 아버지들의 관계보다도 더 가까운게  작은고모부사이였다.

저수지에서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바구니채 들고 고모댁을 찾아 전달해드린건

늘 내 몫.

아버지의 지엄한 분부(?)는 늘 끽소리도 못하고 이행해야 했다.

아버지의 한 말씀은 바로 법이었지.


영산포까지 학교다님서 들렀던 나주의 상윤형님댁.

한때는 그곳에 자전거를 맡기곤 다녔었다.


그후,

처음들어간 임시직장 <나주 산포면사무소>의 근무 6개월.

거쳐를 아예 형님댁으로 몲겨 기거했었지만 한번도 싫은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형님부부.

가장 어려웠던게 바로 형수였는데 너무도 편안하게 해주셔 지금도 잊지 못한다.

6개월간의 생활.

고모의 극진한 사랑과 배려로 편안하게 보냈던건 당신동기간의 우애가 깊은 탓이었을것이다.


유일한 가까운 친척이었고, 자랑거리였는데.....

시골가면 늘 추억찾아 찾아뵙곤 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가시고 말았었다.

그때,

일산의 병원에서 떠나가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마른몸매의 형님.

당신의 가심을 알았을까?

눈이 서러워 보였던건 그 탓이었나 보다.


나와의 전화끝나고 문환이의 전화.

어머니의 독촉에 그런 전화했을거란 상상한다.

형수가 모른척할 그런분 아니라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형수의 인간미.

구수하고 정넘치는 전라도 말투.

형님은 가셨어도 형수님의 생존은 그 나마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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