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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목포 기행

어젠,

절친 셋이서 목포를 찾았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아니고, 바람이나쐬다오자하는데서 갔가온것

용산에서 8시20분 발이 목포엔 10시 47분 착.

2시간 반이면 남쪽 항구까지 갈수 있어 참 좋다.

말이 ktx지 실내좌석은 별로다

비좁고,의자도 뭐 일반석과 별단 다르지 않아 말만뭐 ktx지 빠르단 것만 빼곤 특별한게 전혀 없어 보인다.

좀 편히 쉴수 있게 할수 없을까?  



목포에 도착하자 곧 택시타고, <세월호>가 인양되어 있는 곳으로가자 했다.

입구는 봉쇄되고, 100m거리서만 바라볼수 밖에 없는 그런곳.

<목포 신항>, 인양되어  세워져  있을뿐 곁에서 찬찬히 볼수없어 아쉽다.

멀리서도 선체가 녹이 쓸어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애 가장을 녹인 그 배인가.

안산단원고학생들의 피워보지도 못하고 저승으로 끌고간 원한의 그 배

세월호가 무슨죄가 있는가?

게으름 피우다가 당한 화를....




철문입구엔, 노란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바다에 수장된 원혼들의 울부짓음인양 세차게 나부낀다.

처절해 보이는건 나만의 느낌일까?

그 옆에 도열된 단원고 학생들의 생전의 모습들이 쓸쓸히 나열되어있다.

-왜 어른들은 우릴 빨리 구출해주지 않았냐고 나무란듯 보인다.

-우리들이 바닷속으로 침몰할때 어른들은 뭣을 하고 있었냐고 묻은듯한

그 소리.

-좀 관심만 갖고서 신속히대처했다면 다 살릴수 있었던 아까운 생명들.

수학여행의 설렘도  잠시....선실서 조용히 있어달란 방송만 믿고서 기다리다가 어두운 바닷물에 수장된 억울한 영혼들.

편안히 눈을 감을수 없는 이유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안타까운 그 날의 순간들.

대통령의 한마디  지시만 내렸어도 충분히 살릴수 있었던 생명들.

오랜시간동안 서서히 수장될때 대통령은 무엇을 하였던가?

지금도 의문투성이가 되고있다.



하염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노란리봉을 만지작 거림서 

부끄러운 어른이 늦게야 명목을 빌뿐..



기사의 안내로 식당으로 갔다.

홍어3합에다 , 막걸리와 회.

너무도 많이 시켜 다 먹을수 없다.

목포바다가 바라보는 곳에서 먹었지만, 가격도 엄청 비싸고 맛도 별로다.

평일이라선지, 넓은홀엔 우리뿐...

배도 채우고나니, 나른한 졸음이 밀려오지만, 우린차를 타고서 도청 옥상으로 갔다.

공공시설의 옥상을 개방해 일반인들이 관광으로 온단다.

멀리 영산강줄기가, 그리고 손 닿을듯한 곳엔 삼학도가 있다.

<삼학소주>가 전라도 대표소주였던 60 년대.

그 명성도 어찌된 사연인지 전설로 묻어버리고, 그 자리엔 <보해>가 자리잡고있지만, 그 명성은 못 따라간다.



1979년도에 왔던 목포.

40년만에 찾은 목포.

현대화 근대가 섞여 역사를 보여주는 곳 목포.

많이 변했지만, 역시 목포는 활성화되지 못해 번창하긴 한계가 있단다.

-목포는 살긴 좋아요 헌데 뭐 먹고 살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왔다가 떠난다니깐요.

겨우 인구가 20만 좀 넘을정도로 외려 줄었어요.

기사가 전해준 목포의 현재 자화상이란다.

100 년 넘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면서 활기찬 도시가 된다면 좋은데

그 방안은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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