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에서 <친일경찰>편을 봤다.대표적인 친일 경찰 <김 태석>과 <노 덕술>일본의 앞잡이로 빌붙어 민족의 반역자였던 자들.<반민특위>에서 처단했어야 했을 민족 반역자들.확실하게 정리를 했어야만 했던 친일파 청산작업.
서울 역에서 일본총독<사이토 마코토>의 저격하려다 실패하곤 안전하게 도피했던 <강 우규의사>를 추적하여당당하게 걸어갔단 강 의사를 자신의 공을 과시하기위해 체포하여 수감했던 민족반역자 고등계형사 <김 태석>이 자의 검거로 수감중 만 65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강 의사.검거 공로로 승승장구했던 < 김 태석>.숱한 독립운동가를 일제의 앞잡이로 날뛰던 쥐새끼 같던 그 자들.왜 해방후에 <반민특위>서 이들의 범행을 알면서도 석방했던말인가?기가 막힐 일이었다.가장 먼저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세웠어야 했던 일들.<이 승만 >대통령의 가장 수치스러운 실책이 바로 친일파들을 말끔히 청산하지 못한것이가장 실책중의 실책이라 본다.나치에 협력했던 자들을 지금도 샅샅이 뒤져 엄한 처벌을 하는 독일의 사례를 보면 왜 우린 그렇게 민족을 배신하고 앞잡이 노릇했던 사냥개 같은 자들을 해방후에도 아니 그대로승승장구하게 봐줘야했을까?
독립전에,독립군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김 원봉>빨갱이란 이름을 씨워 그를 체포하고 고문을 했던 노 덕술.<빨갱이>이름만 씨우면 다 처단되었던 어두운 과거.-일본놈을을 소탕하기 위해 이렇게 고생했는데 설마 민족의 배신자였고, 그들의 사냥개 노릇하던 고등경찰였던 노덕술에게 이런 고문을 당할줄이야..한탄했었다는 <독립운동가 김 원봉>독립운동했는데.....빨갱이란 이름을 붙여 민족 반역자 앞에서 고문을 당했던 김 원봉.얼마나 원통했으랴.
승승장구하여 헌병대장까지 올랐던 <노덕술>1968년 서울대에서 노환으로 숨질때까지 온갖 영화를 다 누리다가 수명을 다 했던노 덕술.이런걸 바라보니 어찌 피가 거꾸로 치 솟지 않겠는가?
이 승만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로 4.19학생운동을 촉발시켜 하야하여 화와이서생을 마감한것은 노후의 기력이 쇠퇴하고 인의 장막에 가려서 판단을 잘못해 그렇다쳐도 해방이후의 그 절호의 찬스를 왜 그런 과오를 져질렀을까?숱한 공을 이룩하여 건국의 아버지란 칭호가 당연하게 들리면서도 과오중의 과오<친일청산>을 못한 과오.지금도 친일파니 뭐 친일이니 하는 말이 자주 회자 되는걸 보면 그런 청산을 못한것지금도 엄청난 후유증을 안겨주고 있다.어찌 희대의 일제의 최고의 사냥꾼으로, 민족의가슴에 통한의 아픔을 안겨준 그 자가 해방후에도 승승장구하면서 평화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놔뒀더란 말인가?안두희는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는데 노 덕술을 왜 놔뒀을까?처단했어야만 했다.<민족의 반역자>란 낙인을 찍어서...보는 내내 답답했다.<민족정기>를 세우는 일.그건 국가가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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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조회 :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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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tle prince
2021-08-30 16:04:41
어저께 선을 넘는 녀석들 보셨군요
그러게요 이게 우리의 슬픈 단면아닐까 합니다..
배가본드
2021-08-31 11:17:18
보는 내내 치미는 분노를 가눌수 없었어요
그친일 경찰들의 반 민족적인 행위를 처단못한 그 시대.
그 아픔이 지금껏 이어오고 있잖아요?
답답해서 일기로 써 봤어요
감사해요 우리의 아픈 과거의 단면이죠.
서울 역에서 일본총독<사이토 마코토>의 저격하려다 실패하곤 안전하게 도피했던 <강 우규의사>를 추적하여당당하게 걸어갔단 강 의사를 자신의 공을 과시하기위해 체포하여 수감했던 민족반역자 고등계형사 <김 태석>이 자의 검거로 수감중 만 65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강 의사.검거 공로로 승승장구했던 < 김 태석>.숱한 독립운동가를 일제의 앞잡이로 날뛰던 쥐새끼 같던 그 자들.왜 해방후에 <반민특위>서 이들의 범행을 알면서도 석방했던말인가?기가 막힐 일이었다.가장 먼저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세웠어야 했던 일들.<이 승만 >대통령의 가장 수치스러운 실책이 바로 친일파들을 말끔히 청산하지 못한것이가장 실책중의 실책이라 본다.나치에 협력했던 자들을 지금도 샅샅이 뒤져 엄한 처벌을 하는 독일의 사례를 보면 왜 우린
그렇게 민족을 배신하고 앞잡이 노릇했던 사냥개 같은 자들을 해방후에도 아니 그대로승승장구하게 봐줘야했을까?
독립전에,독립군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김 원봉>빨갱이란 이름을 씨워 그를 체포하고 고문을 했던 노 덕술.<빨갱이>이름만 씨우면 다 처단되었던 어두운 과거.-일본놈을을 소탕하기 위해 이렇게 고생했는데 설마 민족의 배신자였고, 그들의 사냥개 노릇하던 고등경찰였던 노덕술에게 이런 고문을 당할줄이야..한탄했었다는 <독립운동가 김 원봉>독립운동했는데.....빨갱이란 이름을 붙여 민족 반역자 앞에서 고문을 당했던 김 원봉.얼마나 원통했으랴.
승승장구하여 헌병대장까지 올랐던 <노덕술>1968년 서울대에서 노환으로 숨질때까지 온갖 영화를 다 누리다가 수명을 다 했던노 덕술.이런걸 바라보니 어찌 피가 거꾸로 치 솟지 않겠는가?
이 승만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로 4.19학생운동을 촉발시켜 하야하여 화와이서생을 마감한것은 노후의 기력이 쇠퇴하고 인의 장막에 가려서 판단을 잘못해 그렇다쳐도 해방이후의 그 절호의 찬스를 왜 그런 과오를 져질렀을까?숱한 공을 이룩하여 건국의 아버지란 칭호가 당연하게 들리면서도 과오중의 과오<친일청산>을 못한 과오.지금도 친일파니 뭐 친일이니 하는 말이 자주 회자 되는걸 보면 그런 청산을 못한것지금도 엄청난 후유증을 안겨주고 있다.어찌 희대의 일제의 최고의 사냥꾼으로, 민족의가슴에 통한의 아픔을 안겨준 그 자가 해방후에도 승승장구하면서 평화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놔뒀더란 말인가?안두희는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는데 노 덕술을 왜 놔뒀을까?처단했어야만 했다.<민족의 반역자>란 낙인을 찍어서...보는 내내 답답했다.<민족정기>를 세우는 일.그건 국가가 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