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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내가 생각해도 참 난 운이 좋고 인연도 잘 만드는거 같다.
이게 다 운 때문일까.
-학창시절때 나의 진로를 정해서 이끌어 주신 <김 동선선생님>
-가정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시절에 이끌어 주신 <김 명중선생님>
-공무원 시험합격후 이유도 모른체 최종에선 불합격 당해 안타깝던 시절의 <연호 형님의 배려>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못해 좌절에 빠졌을때 조건에 맞는 학교를 선택해
이끌어 주신 김 동선 선생님과 그곳에서 한때 좌절에 빠졌을때 힘을 주신 김 명중
선생님.
두분의 이끄심과 깊은 배려가 없었다면 끝까지 학업을 마쳤을까?
중도포기한 학업,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그런 큰 은혜를 입고도 갚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대다가 찾았을땐 이미 고인된 두분.
타이밍 놓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기회가 항상 있는게 아닌데....
그리고, 성장해서 취업의 문앞에서 서성이면서 공직에서의 최종 불합격
<불합격>의 원인을 알지 못해 안타깝던 그 시절의 <연호형님>의 손길.
-불행히도 아버지가 6.25때 북괴군에게 협조한 것이 기록에 남아 있어 그게
신상에서 체크되어 아웃.
그 시절엔 내 의지가 아닌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조력인데 그걸 트집 잡아서
안된다는 것.
협조않으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마당에 협조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는가?
불행한 시절에 한때의 그런것이 공직에서의 취업에 제한이 걸려서 번번히 낙제당한것을 말끔히 해결해 주신 분이 <연호 형님>였지.
연좌제라고 하는건데 지금은 그런제도 없어진걸로 안다.
캄캄한 밤중에 등불이 되어주신 세 분의 소중한 인연.
성의만 있었다면 찾아뵙고 큰 절이라고 드리고 깍듯히 감사의 말을 전했어야 했는데...
고인된 두 선생님들,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두 분의 선생님들, 지금도 선명한데....
<연호형님>은 지금도 건재하시니 간간히 찾아뵙고 그 날을 회상하면서
감사의 말을 잊지 않으니 그 나마 다행이다.
몇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따스함으로 맞아주시는
연호형님.
더위가 좀 물러가면 다시 찾아뵙고 냉면이라도 사드려야 겠다.
<은혜>를 모르는 것은 짐승과 뭐가 다를것인가?
다시금 오랜날들이 지났건만 그 시절의 고마움을 주신 분들.
곰곰히 회상해 본다.
내가 생각해도 참 운 좋은 나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