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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3 월 11일

60년대의 후반.

대망의 꿈을 안고 고향을 등진  꿈 많은 난 신앙촌을 향했다.

<신앙인>만 모여 산다는 신앙인의 마을 그곳.

평소 신앙과는 무관한 내가 왜 그곳을 찾았는가.

아무런 이유도 없다.

현실도피가 정확한 답.

 

고향은 희망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내가 펼칠수 있는 어떤 매력도 야망을 꿈꾸고 농촌에서 대망을 펼칠 농토도

없던 그곳.

하루 하루가 육체적인 노동의 댓가로 겨우 먹고만 사는 삶.

그건 내가 바랬던 희망은 아니었다.

거기서 내 삶을 펼칠려고 먼 길을 통학하면서 학교를 다녔던가.

 

아무런 당신의 꿈을 가늠해 볼수도없었던 암담한 일제시대의 암흑천지.

-하늘 천 따지 ..

장죽을 입에 물고 한문 사당을 운영하여 혼자서만 한학자로 존경받았던 조부.

왜 자식들은 학교를 보내지 않았는지...

모든 자식들을 문맹인으로 만들어 일군으로만 부려먹었던 이해할수 없는 조부.

그 나마 막내였던 아버진 그런 엄한 할아버지의 덕(?)으로 한문을 배워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배운 탓에 그 나이대의 분들보담 존경을 받았다.

<한문>만 마스터 한다고 인생이 열리진 않아 아버지도 나처럼 고향을 등지곤 일본행.

이역만리 일본에서 7년간의  방직공장 생활.

얻은건 기관지염증을 얻어 평생을 가뿐 숨을 쉬면서 사셨기에 얼마나 힘든 삶을

사셨는가 상상이 간다.

 

내가 간 신앙촌.

2년간 머문 기간에 뭣을 얻었는가?

단체생활에서 대인관계의 기술을 얻었다고 하는게 답일까.

<돈>은 전혀 아니었다.

겨우 숙식정도가 그 생활의 전부..

 

<교주 박 태선>

한때 구름처럼 모여든 신앙인들.

그 교주가 바로 구세주로 보였던지..

그는 바로 하느님이고 신이었다.

자신들의 전 재산을 갖고 들어와 살아야만 했던곳이라...

ㅡ<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는 포부.

그건 그냥 꿈이었다.

거긴 돈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 오직 신앙이 전부였다.

 

대망을 꿈꾸고 찾았던 그날 3월 11일 새벽 4시경의 신앙촌의 아침.

그 날 뿐였다.

2년후 허탈하게 돌아오던  그 추운날.

-여긴 내가 그냥 도피처였지 꿈을 엮기엔 전혀 아닌곳.

드뎌 논산 훈련소행이 내 인생에 새로운 길이보였다.

<군인 정신>이 가르쳐줘서 그럴까?

이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 오늘3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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