挑戦履歴

ダイアリ一覧
アーカイブ
日記の作成時にタグを入力すると、
ここにタグが表示されます。
日記帳設定から非表示可能です。
ここにタグが表示されます。
日記帳設定から非表示可能です。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93년 결혼했고, 94년 임신
대구가 지형이 분지라 덥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는 춥고.
패는 까봐야 안다?그렇지요 나중에 개표를 해봐야알죠요즘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ㅎㅎㅎ실낱같은
어제, 오늘 바깥은 한여름 날씨예요. 특히 대구는 많이
행복님의 것도 사라졌다고 올렸죠? 그 이유가 무언지 궁
일기가 왜 자꾸 사라질까요?거기에 대한 운영자의 답도
여행 즐겁게 다녀오셨나요? 그 사이에 내 일기가 또 3
참으로 오랫만에 이 공간에서 만나니 반가워요하긴 행복님
그 시절을 겪었던 시대라서 그럴까요? 영화의 전성기여
모든 희망을 걸고 달려갔던 그곳 소사 신앙촌.
그게 아마도 시골서 탈출한 첫 타향생활의 시작였던거 같다.
군 입대전까지 머문 2년간의 기간였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는건 나 자신의 탈출
이 혁명적인 사건이라 그런거 같다.
<빛 바랜 낡은 일기>장은 구석에 쌓여있다.
-일기장은 오랫동안 볼거니까 될수록 질 좋은 노트를 사자.
그래서 그 시절의 노트로썬 좀 가격이 높을거 같은 것을 구입했던거 같다.
국판형의 노트가 적어도 200여 페지는 되어야 좀 오랫동안 쓸수 있다
군 제대후,
시골생활은 군 생활에서 자유롭게 멋 대로 살다가 정착해 보니
다시금 어려운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은 날들의 지속.
-너 광주 길곤이 한번 찾아가 봐라 혹시 네 취직자리를 마련해 줄수도 있을수 있으니까..
보기에 딱해 보였던지 아버지의 권유.
뒷집에 살았던 관계로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장남만 고등교육을 시켜 <광주시청 공무원>에 근무.
당시론 공무원은 시골에서 바라봤을때 대단한 출세로 봤던건 아닐까?
10여살이나 더 많은 이웃집 형님였던 <길곤>
아버지의 권유로 광주시청을 찾았다.
출장중이라, 한참을 기다린후에 잠간 애기를 나눴다.
-내가 네 아버지 볼 면목이 없다.
나도 최선을 다해 보는게 그게 쉽지가 않구나 좀 더 기다려봐
내가 갈만한 데가 있음 연락할께..
나를 만나기 전에 아버지께서 취직을 부탁했던 모양.
단지 이웃에 살았다는 인연으로 내 취직을 부탁했다고 하니 얼마나 주변에 친척이 잘 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이런 사람에게 부탁을 했을까?
공무원 신분으로 어떻게 광주에서 내 취직자릴 마련해 줄수 있었을까
길곤형님의 아랫동생들도 줄줄이 많은데....
가당치도 않은 부탁을 했었고, 어떤 정보도 얻을수 없었던
내가 궁하니 어디든 비비고 살려고 그랬던거 같다.
지금 읽어보니 어안이 벙벙해 진다.
-취직을 해줄수 있는 여력이나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지 공무원에게 그런 부탁을 했으니 될게 뭔가?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시골생활의 날들.
그 길을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친 내 이력.
-노안면 잠업지도원 이란 직책을 얻은건 그해 10월.
1년간만 취직이 보장되는 임시직 공무원.
그것 조차도 2달만에 끝나고 만다.
-역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는 나 만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리라.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계기도 떠돌이 임시직 하면서 얻은 교훈였지.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던 날의 암울한 날들이 일기여서 가끔 훔쳐 보곤 한다.
젊은 시절의 역경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거 같다.
불굴의 의지를 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