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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모든 희망을 걸고 달려갔던 그곳 소사 신앙촌.
그게 아마도 시골서 탈출한 첫 타향생활의 시작였던거 같다.
군 입대전까지 머문 2년간의 기간였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는건 나 자신의 탈출
이 혁명적인 사건이라 그런거 같다.
<빛 바랜 낡은 일기>장은 구석에 쌓여있다.
-일기장은 오랫동안 볼거니까 될수록 질 좋은 노트를 사자.
그래서 그 시절의 노트로썬 좀 가격이 높을거 같은 것을 구입했던거 같다.
국판형의 노트가 적어도 200여 페지는 되어야 좀 오랫동안 쓸수 있다
군 제대후,
시골생활은 군 생활에서 자유롭게 멋 대로 살다가 정착해 보니
다시금 어려운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은 날들의 지속.
-너 광주 길곤이 한번 찾아가 봐라 혹시 네 취직자리를 마련해 줄수도 있을수 있으니까..
보기에 딱해 보였던지 아버지의 권유.
뒷집에 살았던 관계로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장남만 고등교육을 시켜 <광주시청 공무원>에 근무.
당시론 공무원은 시골에서 바라봤을때 대단한 출세로 봤던건 아닐까?
10여살이나 더 많은 이웃집 형님였던 <길곤>
아버지의 권유로 광주시청을 찾았다.
출장중이라, 한참을 기다린후에 잠간 애기를 나눴다.
-내가 네 아버지 볼 면목이 없다.
나도 최선을 다해 보는게 그게 쉽지가 않구나 좀 더 기다려봐
내가 갈만한 데가 있음 연락할께..
나를 만나기 전에 아버지께서 취직을 부탁했던 모양.
단지 이웃에 살았다는 인연으로 내 취직을 부탁했다고 하니 얼마나 주변에 친척이 잘 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이런 사람에게 부탁을 했을까?
공무원 신분으로 어떻게 광주에서 내 취직자릴 마련해 줄수 있었을까
길곤형님의 아랫동생들도 줄줄이 많은데....
가당치도 않은 부탁을 했었고, 어떤 정보도 얻을수 없었던
내가 궁하니 어디든 비비고 살려고 그랬던거 같다.
지금 읽어보니 어안이 벙벙해 진다.
-취직을 해줄수 있는 여력이나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지 공무원에게 그런 부탁을 했으니 될게 뭔가?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시골생활의 날들.
그 길을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친 내 이력.
-노안면 잠업지도원 이란 직책을 얻은건 그해 10월.
1년간만 취직이 보장되는 임시직 공무원.
그것 조차도 2달만에 끝나고 만다.
-역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는 나 만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리라.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계기도 떠돌이 임시직 하면서 얻은 교훈였지.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던 날의 암울한 날들이 일기여서 가끔 훔쳐 보곤 한다.
젊은 시절의 역경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거 같다.
불굴의 의지를 배우니까...